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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열두달 Jul 20. 2023

반짝이는 강물처럼

안녕, 나의 푸른 열두 달, 푸른 나날들

떠올려보면 어린 시절의 선명한 기억은 여름날이다.

반짝반짝 햇볕에 빛나는 강물, 버드나무가 휘날리고, 강을 따라 늘어선 노란 꽃밭이 먼저 떠오른다.


반짝이는 강과 함께 그 주변을 내달리고,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내리 달리던 그 길들, 강아지들과 마음껏 뛰어놀고, 마당에는 그네를 매어 둔 감나무가 자리한, 그 마을, 그 집이 내 유년기의 배경이었다.


매일을 흙을 만지고, 돌을 만지며 풀꽃을 구경하는 일이 하루 일과였던 그날들. 뜨거운 햇살 아래, 햇살에 몸을 맡긴 채 마음껏 피부를 그을리며 뛰어놀던 그 동네. 단 하나뿐인 마을 회관 안의 슈퍼마켓에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러 다녀오는 일상만으로도 행복했던 그때의 시절이었다.


우리 동네는 윗동네, 아랫동네라고 부르며, 윗동네 아이들과 함께 모여 아랫동네에 놀러 가고, 아랫동네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윗동네에 놀러 오곤 했다. 비가 온 뒤 흙탕물이 되어버린 강물도, 태풍의 한가운데 있음을 온전히 느낀 시간도, 온통 초록색 연잎으로 뒤덮인 봄과 여름의 연 밭도, 우리들보다 덩치가 더 컸던 우리 옆집 개들도 내 기억의 조각조각이 되어 지금의 감성과 마음을 이루었다.


그렇게 온전히 사계절을 느낄 수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그 시절의 풍경들이 내 꿈속의 배경이 되어 등장하곤 한다. 그만큼 그 시절은 내 삶의 풍광이 되어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마당의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를 따러 사다리에 올라탄 아빠를 올려다보며 좋아하고, 무수히 잎이 떨어지는 가을의 감나무를 보면서 행복해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니 넓은 마당에 빗질을 해두면 다시 감나무잎이 떨어져 내리고, 또다시 떨어져 내리려 엄마는 조금, 아니 많이 힘이 드셨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서 어딘가에 나가기 위해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모여 계신 평상마루 관문을 꼭 지나가야 했다. 하하 호호 웃으며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면 "어이구~ 인사 잘하네 예쁜 나비들" 하며 뿌듯함을 안겨주셨다. 그렇게 인사 하나만으로도 칭찬을 듣고 버드나무가 머리칼처럼 휫날리는 평상마루를 지나갈 때면 의기양양한 발걸음으로 걷곤 했다.


서른 중반인 지금의 내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마음과 기억을 이룬 여름날의 잔상들.


삶이 햇볕을 내리쬔 강물처럼 늘 반짝반짝하기만을 바랬지만, 산다는 게 계속해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은 건 그리 머지않아서다. 그렇게 나의 여름날은 막을 내리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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