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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열두달 Jul 20. 2023

방 안을 가득 채운 피아노

그땐 그런 의미인 지 몰랐지

초등학생이 되어, 여느 날처럼 부모님께서 사주신 갈색 피아노를 언니와 함께 뚱땅거리며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중요한 미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부모님의 생신이나 어버이날이 되면 우리만의 이벤트를 준비하곤 했다. 학원에서 배운 피아노곡 중 우리가 가장 잘 치는 곡을 준비하고, 부모님을 웃겨드릴 춤과 노래를 준비하고, 예쁜 그림을 그린 카드를 준비했다.


부모님을 앞에 모셔두고, 우리만의 공연을 펼쳤다. 둘이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연주할 때 우릴 바라보던 부모님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어렴풋이 우리의 연주가 끝날 때쯤 환하게 웃던 얼굴이 떠오른다.


"너희가 우리 생일 때마다 특별한 이벤트 해준 것들 생각나니?"


내가 서른 중반인 지금까지도 부모님께서 선명하게 기억하시는 것을 보면, 그런 자식들의 모습이 부모님의 마음에 큰 기쁨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저 해맑게 지내는 나날들에도 조금씩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너희 부모님 깻잎 가져오셨더라?"


5학년이 되었다. 학교에 감사의 인사로 직접 농사지어 수확하신 깻잎과 토마토 몇 박스를 가지고 아빠가 오신 날이었다. 깻잎머리 모양 흉내를 내며 이마에 손을 붙이고 놀리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쯤부터였던가, 나는 우리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은 아니더라도, 주위의 아이들의 환경보다 우리 집이 좀 더 경제적으로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아이들에게는 그게 놀릴 만한 일이었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문제였던 것인데. 대가족 속에서 장남 장녀로 조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을 건사하시고, 오래 살아온 마을에서 좋은 인품을 칭찬받으셨던 우리 부모님은 분명 훌륭한 분들이었다. 그 속에서도 구겨진 얼굴 한 번 자녀들에게 내비치지 않으셨는데, 내게는 조금 힘들게 산다는 것이 조금씩 부끄러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주변 아이들처럼 좀 더 멋지고 싶었다. 나의 배경으로 놀림받고 싶지 않았다. 놀림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 놀림받았다. 앉은자리에서 끊임없이 깻잎을 예쁘게 하나하나 손으로 묶고, 뜨거운 햇볕 아래 일하시는 부모님인데, 이런 놀림받고 싶지 않은 마음조차 죄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그때 말하지 못했을까?


"뭐가? 우리 부모님께서 열심히 일하신 소중한 것들이야. 그렇게 말하면 정말 기분 나빠."


무언가 부모님의 성실한 삶을 대변하지 못했다는 알 수 없는 죄책감도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멋지고 훌륭한 부모님인데, 그렇게 다른 주변의 이들보다 조금은 더 가난하다는 사실, 안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는 점차 숨기 시작했다.


모범생이었고, 반에서 곧잘 공부를 했던 내게 선생님들은 앞에 나설 일이 많은 반장과 같은 일들을 시키고 싶어 하셨고, 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그렇지 않아도 내성적인 성격에 더더욱 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잘하는 것이 있어도, 아는 것이 있어도 나서거나 드러내지 않고 싶었다.




중학생이 되었다. 가정 형편을 아시는 담임 선생님께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상대로 장학금 같은 것을 학교에서 주게 되었다고 하셨다. 단,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단상에 올라가 장학금 증서를 받고, 인사를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만, 그 당시 여러 경험을 통해, 그리고 정서적으로 민감했던 나는 우리 집 형편보다는 단상에서 공개적으로 받는다는 사실이 더 걱정이 되었다.


"선생님, 장학금은 개인적으로 받을 수 없을까요....?"


수십 초간 침묵이 흘렀다.


"........., 너 지금 이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나의 그 마음에, 선생님은 강하게 화를 내시며 내 마음을 질책하셨다.


그렇게 나는 공개적으로 단상에 올라가 인사를 하고,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도 부끄러운 일이라는 마음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어린 시절 하하 호호 웃던 화목하기만 한 것 같던 우리 가정이었다.

많은 가족을 책임지고 생계를 이끌어가시는 부모님에게 어려움이 찾아오고 우리에겐 사춘기가 겹치면서 점점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도 말수도 사라져 가는 가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끔 친정에 가면 거실에 놓인 그때 그 시절의 피아노가 있다. 그 피아노를 바라보면, 왠지 삶을 지나온 나 자신을 보는 것만 같다.


조율을 하지 않아서 음도 전부 조금씩 틀리고, 탁한 소리도 나곤 하지만 건반을 어루만지고 가만히 앉아서 피아노를 치곤 한다. 분명 깨끗하지만은 않은 소리가 나는데, 세월의 정이 담겨 있어서인지 마음이 가는 음색이다.


그럴 때면 별말씀을 하지 않으시지만 소파에 앉아서 얼핏 무심한 듯 피아노를 듣고 계시는 아버지, 탁탁탁 칼질을 하며 요리를 하시면서도 '좋다~'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그 시절, 당장의 생계도 불안정했던 시절, 어쩌면 아무리 떳떳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나보다 더 현실의 냉혹함 속에 마음을 많이 다치셨을 부모님. 그런 부모님이 큰돈을 들여 우리가 가장 갖고 싶던 피아노를 좁디좁은 방에 사다 놓으셨을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 가장 사랑하는 자식들이 그저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낙이지 않으셨을까.


남들보다 조금은 더 가난하다는 것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던 어린 그 시절의 나는, 이제 자녀를 낳고 기르는 부모가 되어서야 방안 가득했던 피아노의 의미를 깨달았다.


우리가 함박웃음 지으며 연주하는 그 모습 그걸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모님께선 그 비싼 피아노를 구입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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