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가볍게 떠나게 된 이유
드라마와 영화 한 편을 보기 전, 등장인물 각각의 캐릭터와 기획 의도, 줄거리까지 꼼꼼하게 읽고 정주행을 시작하는 나. 그 어떤 정보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남편.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도 이렇게 다른 모습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여행을 갈 때면 여행지에 가기도 전에 그곳의 숙소와 맛집, 이동 수단 등을 철저히 계획했다. 엑셀 한 페이지에 꼼꼼히 정리하고, 비가 오거나 가게가 문을 닫았을 경우 등의 변수까지 고려해서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는 ‘만약에’라는 생각으로 캐리어에 이것저것 짐을 가득 채우고 준비하곤 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챙기는 것이 즐거웠던 나는 완전히 정반대 성향의 남편을 만나서 살고 있다. 즉흥적으로 떠나기를 즐기고,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은 여행지에 가서 사고, 여행지 상황에 따라 그 자리에서 식당을 검색해 보는 남편. 처음에는 그런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상황을 함께 하는 게 힘들기도 했다. 미리 준비할 수 없는 상황들이 꽤 불편했다.
그러던 나도 남편과 몇 년 동안 살다 보니 언제부터 인가 짐을 많이 챙기지 않는다. 최대한 가볍게,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여행지에 가서 필요한 것을 추가로 구입한다. 그리고 이전에는 미리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수많은 블로그와 영상 등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접하고, 이미 여행을 다녀온 기분일 때도 많았다. 그런 나는 이제는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리는 것을 받아들일 '열린 마음'을 준비하게 되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감정과 기분과 만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제 어디론가 떠날 일이 생기면 최대한 철저하지 않은 준비를 한다. 계획적인 내 일상에 이러한 즉흥성을 받아들이게 되니, 훨씬 생기 있고 일상 속의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변수와 돌발 상황에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