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 속의 변화의 시간들
거슬러보자면 나의 ‘혼자의 역사'는 꽤 길다. 대가족 속에서 자라나며 수많은 친척 모임 속에서도 기어이 고요한 공간을 찾아내고 말았던 나다. 감각이 예민했던 나는 시끌벅적한 대화들 속에서 잠깐이라도 침묵의 시간이 꼭 필요했던 아이였다. 잠시나마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다시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으로 씩 웃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섞이곤 했다.
동네 친구들과 조잘조잘 뛰어노는 시간도 좋았지만, 앞마당의 흔들리는 풀꽃을 구경하는 일, 반짝이며 여러 모양새로 흘러가는 강물을 조용하게 바라보는 일, 두 손으로 꼼지락꼼지락 무언가 만드는 일을 해낼 때 행복감으로 가득 차올랐다.
20대에 상경한 후에는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채워갈 시공간이 마련되었다. 혼자만의 방에서 홀로 겪어온 취업 준비와 시험 준비. 합격과 불합격을 오가며 어린 시절부터 순수하게 품어왔던 '디자이너'라는 꿈에 다시 용기를 내 도전한 시간까지. 10년이란 시간 동안 혼자 겪어낸 나의 시공간은 불안과 기쁨과 좌절과 성취감으로 채워졌다.
나에게 ‘혼자’란 다시금 씩 웃으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깊이 알아가고 이해하여 세상 속에서 나를 더 잘 인식하고 다루고 내어놓기 위한 시간. 번데기를 뚫고 나올 준비가 된 나비가 되어가던 시간이었다. 내게 꼭 필요했던 그 고요한 시간. 그 시간 동안 너무나 고요하여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 같지만 지나고 보니 그 침묵 속에 마음과 생각은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조용한 번데기 안에서 아주 서서히 자라나 마침내 날아가기 위해 나뭇가지 끝을 디디고 서본다. 혼자만의 긴 시간을 보내온 나는 이제 방 한편 마련된 작업실에서 소박한 꿈을 통해 세상의 사람들과 연결된다. 혼자 있으나 분명 세상과 연결이 되어 있는 혼자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하여 흘러가 버리기 쉬운 생각을 붙잡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렇게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이 혼자의 시간을 아끼고 소중히 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