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인 풍경이 달라지는 거니까
“어... 어... 어!”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을 들음과 동시에 고속도로의 갈림길을 빠르게 지나쳤다. 이 길이 아닌데, 오른쪽 길로 빠져나갔어야 하는데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길은 지나치고 말았다. 긴 여행을 하며 누적된 운전 시간에 다시 돌아가야 할 거리가 추가되고 말았다. 기어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와 관련 없는 듯한 길을 굽이굽이 돌아간다.
긴 이동 시간에 더해진 이동 거리로 모두 꾹 다문 입술, 아파져 오는 허리, 몸을 비틀며 힘들어하는 아이. 그렇게 갈림길을 지나치는 찰나 틀린 선택을 했다며 후회하는 순간, 우리의 눈앞에는 또 다른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새로운 들꽃, 색다른 나무, 산, 건물들. 그리고 눈이 탁 트이는 광활하게 펼쳐진 옥수수밭, 지나온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구름 사이사이의 주황빛 노을.
우리들의 삶에도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게 되는 선물 같은 풍경들이 있다. 우연히 마주한 새로운 상황들은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흔적들을 남긴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나고 그때 그 선택을 차근차근 되돌아보았을 때만이 그 선택이 나에게 남긴 의미들, 나와 주변에 미친 영향과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지나고 나서야 우연히 만나게 된 무수한 인연들, 경험, 풍경들이 쌓여왔음을 알게 된다.
우연히 만난 것의 기쁨은 왠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예기치 못한 풍경들이기에 우리에게 더욱더 진한 기억으로, 여운으로 자리 잡는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내린 결정과 선택의 옳고 그름보다는 내가 한 선택으로 만나게 될 우연한 순간들을 기대하게 된다.
'우연'이라는 팻말 앞에 선다면 우리의 걸어온 길, 걸어갈 갈림길의 순간 어떤 선택도 틀림이란 없다. 지나온 길, 지나가게 될 길 위에 놓인 풍경들이 달라지는 것뿐. 그러니 어떠한 선택의 순간 우리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자고, 이미 놓친 것에 대해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너무 후회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모든 길 위의 우연한 순간들은 멋졌다고, 멋질 거라고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