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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머리 어린 나와 엄마
by
다정한 포비
Jan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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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다니던 나이에 머리 수술로 잠깐 빡빡머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가 개나리 노란 병아리색 모자를 사주셨는데, 나는 어디든 늘 그 모자를 쓰고 다녔다.
어느
날인가 무슨 결심이라도 하신 듯이 엄마가 모자를 숨겨두고 모자 없이 유치원에 다녀오라 하셨다.
나는 머리띠를 두른 듯 길게 남은 머리 수술 흉터와 빡빡머리가 무척 부끄러웠다.
어린아이
발걸음으로 30분이 넘는 유치원까지 빡빡머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누가 보지 않을까 잔뜩 긴장한 채 겨우겨우 병설유치원 교문까지는 도착했지만, 이미 지각도 했고 교문도 닫혀있었다.
때마침 교문 안쪽으로 지나가시던 소사 아저씨가 무어라 말을 건네셨지만, 나는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교문 앞에
쭈뼛쭈뼛 서있기만 하던 나는 결국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엄마가 이유를 물으셨을 때 나는 유치원에서 가장
개구쟁이 었던 동철이가 놀려서 그냥 돌아왔노라고 거짓말을 했다. 동철이를 만나기는커녕 입구까지도 못 들어간 주제에 말이다.
엄마는 바로 유치원에 전화를 넣으셨다.
전화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동철이 이야기도 들렸다. 엄마는 아마도 따져보려고 전화를 하셨겠지만 별 소득은 없으셨을 것이다.
.
.
.
그런데 예상외로 나는 그날 엄마에게 전혀 혼나지 않았다.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내 노랑 모자도
돌려받았다.
어린 나의 기억이 때때로는 엉켜버려서
같은 날인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엄마가 나에게 500원짜리 다이제스티브 과자를 사주셨다.
그 당시에 무척 비싼 과자이기도 했지만 오남매인 우리 집에서
넷째 딸인 나에게 단독으로 엄마가 무얼 사주신 적이 처음이라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엄마가 예쁘고 귀한 남동생을 의식하셨는지 그날 처음으로 이 과자는 나 '혼자' 먹으라고 하셨다.
'혼자'
내가
잘못 들었던 것일까?
'혼자' 라...
나는 진하고 달콤한 다이제스티브 과자를 한 개먹고 포장지로 덮어놓고 두 개먹고 덮어놓고 결국은 동생이랑 나눠먹었더란다.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을 그 시절의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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