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며느리는!

by 다정한 포비

명절에 전을 미리 부쳐서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행정계장님들께 조언을 구하니,

실행력 끝내주는 의리의 행정계장님들께서 얼른 내 하체 길이만한 그릴을 구해다 주셨다.


그릴 길이에 맞는 마땅한 포장용지가 없어 나는 그릴 몸통을 통째로 드러낸 채 그릴을 끌어안고 퇴근을 해야 했다.


알만한 분들이(주로 여성분들)

"아! 전~~~"하고 아는 체를 해주었다.


나는 그릴로 얼굴을 가렸다.


'그래, 두 번 볼 사람들도 아닌데~괜찮아! 용기를 내! '


수많은 직장인 인파를 그릴과 함께 뚫고 가며 나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K며느리의 위엄을 떨쳤다.


내가 전을 부치겠다 하니 다들 광장 시장으로 가라 했다. 거기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안된다.

정 사정이 생겨 못 부쳐갈지언정 우리 어머니하고 나만의 오랜 의리와 정성을 쉬운 방법으로 대체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니 다른 행정계장님께서 그럼 재료를 사 와서 다 같이 휴게실에서 부치자고 하셨다.

나눠도 먹고 품앗이도 하자면서 말이다.


그때 과장님께서 놉! 화재위험! 취사금지!라고 말씀하셨고,


곧 다른 직원분이

'전기그릴이옵니다요'라고 응수하셨다.


나는 그럴 생각은 하나도 없었는데,

K며느리의 고충에 모두 진심인 유익한 대화였다.


매년 의도치 않게 브라운 색깔의 전을 부치는 나는,

올해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실패 없이 선명한 노랑빛의 예쁜 전을 부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일단 생으로 먹어도 가능하고, 오래 익히지 않아도(안 익어도) 배탈이 나지 않을 재료를 사용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 보다 소고기, 호박, 새우 등의 재료가 그러하다. (빛난 선생님이 알려주신 예쁘고 기발한 하트 모양 맛살전도 해보고 싶다.)


오늘 장을 보고,

내일은 재료 손질을 해야 하는데.


아 근데 왜 퇴근길부터 졸리냐.


아이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