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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난 술 취한 아저씨

by 다정한 포비

밤 9시 넘어 퇴근하는데 거짓말처럼 저기 버스정류장 앞에 사람이 곱게 누워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50대 후반의 아저씨다. 아저씨는 숨도 잘 쉬시고 "아저씨!" 하고 부르니 눈도 뜨고 대꾸도 하신다.


(2주일 전에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따끈한 교육생인 나는 갑자기 오늘 실전에 임하게 되는 건 아닌지 순간 무척 당황했었다.)


아저씨는 다만 술을 많이 자신 것 같았다. 오히려 마치 자기 집 안방에 누워 있는 것처럼 너무 편안해 보였다.


나는 먼저 경찰에 신고를 했다.


"여기 땡땡땡 버스정류장인데요. 사람이 누워 있어서요. 의식은 있으시고요. 차도로 내려가실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버스 시간이 늦어서 그런데 저는 먼저 집에 가도 될까요?"


전화기 너머 경찰 관계자가 신고자인 나는 집에 가도 된다고 하셨다.


아저씨 옆에 차도를 막고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저씨가 누워서 나한테 말을 거신다.


"나한테 왜 이런데유? "


"네? "


아저씨 발음이 불명확해서 나는 아저씨 말을 듣기 위해 아저씨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내가 뭘 잘못했데유?"


"......"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나는 아저씨가 듣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혼잣말을 했다.


"아저씨 나 이제 버스 타고 집에 가요~ 경찰 온다고 하니까 움직이지 말고 여기 가만 누워 있으세요!"


신고자인 나는 간다고 말해놓고도 버스를 한 대 놓치고, 두 번째 버스를 겨우 탔다. 버스에 올라타니 경찰아저씨 두 분이 막 도착하신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었다.


아저씨는 무엇이 억울하고 속상했나?


그렇지만 오늘은 나도 피곤한 하루였는 걸.


아저씨 말을 다 들어주지 못해 미안해요.


처음 보는 술 취한 아저씨의 술주사가 공감이 가는 이상한 밤이다.


나는 그저 '밤'의 마력에 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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