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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묵주와 헤어지고 새 묵주를 맞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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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포비
Aug 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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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이 넘게 가지고 다녔던 나무 묵주의 알이 반으로 부서졌다. 영원한 것은 없겠지만 이 나무 묵주는 그 알이 단단하고 두툼한 실로 이어 있어서 내심 오래오래 나와 함께 해주길 바랐었다.
또, 마음이 무척 힘들 때 엄마가 쥐어 준 묵주이고 한 알 한 알이 포도알처럼 매끄럽고 윤이 나서 사람들이 독특하다고 말해 줄 정도로 개성 있는 묵주여서 그런지 더 애착이 갔다.
일 년이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묵주로 묵주기도 5단을 기도드렸고 어딜 가든 항상 함께 했는데,
이 묵주는...... 그렇지.
나처럼 고지식하고 투박하다.
하지만 그 모양이 염주알 같아서 때때로 "혹시 불교신자세요?"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고, 묵주 끝에 십자가가 손을 닦거나 일할 때 이리저리 부딪칠 때도 있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제는 알이 깨져서 다칠 위험이 있으니 정말 보내줘야지 하고 마음먹으니 마음 한 편으로는 예쁜 새 묵주를 살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은 미사가 끝나고 바로 성물 판매소에 들렀다. 팔찌 묵주를 고르느라 한참을 고심하고 있으니 판매소 봉사자분들이 직접 매대로 나와서 고르는 것을 도와주셨다.
나는 진중한 느낌의 짙은 옥색 빛의 묵주를 내밀며
"이건 어떨까요? 역시 너무 어르신 색깔이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눈에 띄지 않고 소박하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투박하지만 개성 있는 묵주를 고르고 싶었지만, 판매소 봉사자분들은 젊은 사람이니 밝은 것을 하면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셨다.
그러다 문득, 나는 언제부터 화려함과 거리를 두게 되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안으로 작이지는 기도만 하고 있을까. 외치고 환호하며 기뻐하는 기도를 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진주 비즈와 크리스털 비즈로 엮어진 묵주를 회사 사무관님 선물용까지 함께 두 개를 샀다.
마침 신부님이 계셔서 감사하게도 바로 축성도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착용해 보니 쨍한 밝음이 아직은 어색하다.
오늘은 이렇게 글을 쓰며 정든 묵주와 진짜
이별하는 중이다.
물건이지만... 이별이 쉽지 않다.
아차! 중요한 것은 정성스러운 마음이지 묵주 자체가
아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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