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는데...
읽고 있는 책을 잠깐 내려놓고, 습관처럼 어릴 때 수술했던 오른쪽 앞이마를 긁적이다가, 위로가 좀 필요한 것 같아 책꽂이에서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를 꺼내 들었다.
내가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책.
김정훈 부제님 유고집.
인간적인 고뇌와 그 섬세함이 유리알처럼 투명해서 나한테는 좀 많이 아프다.
재작년에 이미 읽은 책이고 여러 번 계속 찾아 읽으면서도 리뷰를 쓰지 못했다. 언젠가 꼭 써봐야지...
밤이 많이 깊었다.
'다시 한 번 돌이켜 당신을 쳐다보게 하십시오. 온갖 것은 당신이 하시는 것, 어둠의 절벽에 선 그 순간, 당신을 돌아보고 가냘픈 한숨을 몰아쉬게 하십시오. 그 순간이 제게 죽음이게 마옵시고 다시금 당신을 우러르게 하십시오. 극진한 찬미가는 제가 못하는 것, 당신을 기릴 수도 저는 없습니다. 오로지 당신을 의식하게 해주십시오.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우신지, 얼마나 크신 사랑인지 그것은 제가 헤아리지 못하는 것, 오직 돌아보는 한 가닥 시선, 그 가냘픈 올실, 그것을 끊지 말아 주십시오. 그것을 잃지 말게 해주십시오. 이 어둠의 순간 한 번 더 당신을 생각해 쳐다보게 하십시오. ' (250p. 책중에서)
내 존재가 끝간 데까지 가 더 이상 걸음을 내디딜 수 없는 기막힌 순간에 가서야 잡게 될 그 희미한 자국, 어찌 그 자국을 나의 절대적인 전부라고 하지 않겠는가. 내 존재의 지주이며, 곧 나의 생명이다. 그것 없이는 나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다. 나는 그것을 놓칠세라 결사적으로 붙들 뿐이다. 이것이 나의 전부고, 내 살아온 나날의 전부이고, 내 생명이 마치는 날까지 내가 목표로 할 유일의 것이다.
그곳에 그 자국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글쎄, 그것을 부정하면 희망이 없어진다. 나는 살 수가 없다. 나는 살기 위해서 그 자국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버린 달팽이 껍질이 군화짝에 밟히듯 내 존재는 산산조각 가루가 나버릴 것이다. (133p, 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