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관한 사색3-한심종자라 생각했는데
난 아버지가 화장실 다녀와서 손을 안 씻는 게 싫다
화장실 문 열어놓고 혼자 담배 피며 볼일 보는 것도 싫다
쩝쩝거리며 밥 먹고 식탁 한 번 안 치우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혼자 리모콘 틀며 티비 보다 자는 것도 싫다
퇴직금을 다 털어넣어 가게를 차린 뒤에 가족들에게 돈을 얼마나 빌렸는지, 그리고 갚지 않았는지 생각하면 억한 심정이 된다.
사업가라면 응당 제 몸 관리에 힘쓰고 자기가 뭘 연구하고 탐구해야 하는데 매일 술 마시는 데나 열심이고 휴대전화 문자도 카톡도 사용할 줄 모른다는 점이 못 미덥다
매달 나오는 연금을 고스란히 혼자 다 쓰면서도
엄마에게 생활비 한 푼 주지 않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엄마가 밥 차려주고 시중 드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가증스럽다
밖에서는 호인이지만
안에서는 자기 할 일도 미루고 크고 작은 사고들을 친 뒤 각종 뒷처리는 엄마나 자식에게 나몰라라 맡겨버리는
모습들도 너무너무 싫다
그러나 그는 언니와 나를 나은 사람이고
동생들을 셋이나 더 나은 것에도 모자라서
집 안에 십 여마리의 고양이들을 풀어놓고 기르는 것을 보며
저 사람은 과연 무책임한 한심종자인지
세상에 많은 생명체를 내보내는 데 탁월함을 가진 사람이라 평가해야 할지 헷갈리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그에게서 후자의 면모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낮에
식용유를 사러 갔다 오는 길에
아파트 마당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걸 보았던 것이다.
다행히 머리가 깨지거나 창자가 튀어나오진 않았지만
차에 받쳐서 죽은 게 분명한 새끼 고양이는
한여름 뜨거운 태양열에
옆으로 누운 채 바닥에 눌러 붙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그런 걸 보는 것을 극혐한다.
은근히 뽀시라운 사람이 나다.
스스로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여긴 적도 있었지만
나는 그릇이 작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사랑 받을 짓을 하는 상식적인 대상에게만 사랑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파트 마당에 고양이가 죽어 있어요"
라고 하자마자
'검은 비닐봉지 하나 준비하라'고 하며 장갑을 꼈다.
의롭다 여겨지는 일에 고민 없이 바로 행동으로 나서는 이 ...
궂은 일에 강한 사람...
순간 그런 사람의 면모를 아버지에게서 발견했다.
나는 비닐봉지와 신문지를 챙겨서 아버지에게 드렸고
두려운 마음을 감추며 쫄래쫄래 아파트 마당으로 따라나갔다.
아버지는 한치의 고민 없이 장갑으로 죽은 새끼 고양이를 들어올린 뒤 신문지에 고양이를 둘둘 감쌌다.
고양이는 깃털마냥 가볍게 들렸다.
그리고 아버지가 신문지로 고양이를 감싸는 솜씨는
신속하고 정확했다.
나는 두 가지 모두를 목도하며 내심 놀라워했다.
나를 벌벌 떨게 하는 궂은 일 앞에서
의연하게 고양이를 처리한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무표정하게 뒷마당으로 걸어가
텃밭을 가꿨다.
저런 의연함을 가진 사람이 내 아버지라니!
내공 깊은 무림 고수 같은 느낌으로 아버지를 잠시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늘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
한심종자처럼 느껴지지만
어쨌든 64년간 모진풍파를 겪어낸 내공이 있기에
말뿐인 나보다 실제로 행동하는 힘은 더 큰 사람..
무림 고수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고도 나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