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황제' 될 때, 직원은 어떻게 망가지는가
프리랜서로 해외 인솔자 일을 하다 보면 유독 나와 결이 맞지 않는 회사가 한두 곳은 있기 마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표적인 곳이 내가 안나푸르나에 갔을 때 인솔자의 꿈을 처음 심어주었던 바로 그 회사였다.
그래서 언젠가 꼭 함께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인솔자로 일하게 되니 알겠더라.
이 회사는 나와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는 곳이었다는 것을.
상황은 복잡했다.
난 짤렸지만, 나도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서로 잘 헤어졌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총 세 번 걸었다.
첫 번째는 교육생의 신분으로 조용히 참관했고, 두 번째는 같은 회사에서 800km 프랑스길 풀코스를 책임졌으며, 세 번째는 바로 문제의 그 회사와 함께한 일정이었다.
재미있게도 그 회사는, 내가 처음 안나푸르나를 갔을 때
“여기서 꼭 직원으로 일하고 싶다”
라고 속으로 바램을 품었던 회사였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함께했던 회사에서
'다시 같이 일해달라' 며 여러 번 요청해 왔음에도 미안함을 무릅쓰고 거절했던 것은 바로 이 회사에서 산악전문 인솔자로 일하는 것은 안나푸르나 갔을 때부터의 로망이었기 때문이었다.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이 회사를 S투어라고 명하겠다. (회사명과는 상관이 없다. 그저 개인적인 감정이 실린 작명이다)
비싸고 (사실 특출 나게 비싸지도 않...) 훌륭한 서비스를 받는다고 알려진 이 회사 고객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사실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더 많..)
그들의 자부심은 트레킹 가기 전 회사의 전화응대로 시작된다.
오죽했으면 회식할 때 회사 초짜 신입생이 '전화받는 게 제일 무서워요' 했을까?
비싼 만큼 이 회사의 산티아고순례길 프로그램은 이전 회사와 다르게 진행되었다.
일단 나 외에 스텝이 두 명 더 붙는다.
한 명은 현지 한국인 가이드로써 초반 손님들의 적응을 위해 열흘 정도만 함께하다 빠진다.
나머지 한 명은 운전기사로 손님들의 짐을 날라주거나 여러 가지 잡일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함께 걸어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이전 회사와 달리, S투어의 철학은 확실했다.
“걷지 않아도 된다. 대신 손님 편의를 위해 뛰어라.”
그래도 나는 ‘걷는 인솔자’였다.
늘 먼저 길에 나서 이정표가 되었고, 열흘 동안 함께하던 현지가이드는 중간중간 손님들과 하이파이브하며 사기를 올리는 역할을 맡았다.
운전기사는 뒤에서 짐을 나르고 자잘한 업무를 맡아 팀은 자연스럽게 완벽한 삼각 편대처럼 움직였다.
문제는, 그 조합이 열흘 만에 깨졌다는 것이다.
손님 적응을 도와주겠다며 붙어 있던 가이드가 열흘을 끝으로 빠지자, 모든 서비스의 무게추가 한순간에 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전 회사에서 순례길을 혼자 진행할 때는 아무 문제없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고품격 서비스'라는 말에 취해 있던 손님들은, 직원 한 명이 사라진 빈자리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나에게 돌려놓았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이미 초반부터 내게 욕설과 고함을 퍼부었던 ‘ㅂㄹ 의심커플’의 남자가 있었다.
그가 초반부터 나에게 삿대질하며 소리 지르는 걸 본 다른 손님들은 마치 암묵적 허락을 받은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나에게 이유를 따지고, 짜증을 내고, 감정을 배설하는 분위기.
마치 “여긴 산티아고가 아니라 감정 쓰레기장인가?”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고품격 서비스라는 말은 인솔자에겐 고품격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것을
하루 평균 25km씩 걷는 일
그 자체로도 충분히 고된 여정이다.
힘들다는 것, 물론 이해한다. 누구라도 힘들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손님들이 인솔자를 감정의 쓰레기통 정도로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손님은 왕을 넘어선 황제로 받들라고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이 회사 방침 덕분에 나는 매일같이 감정의 돌팔매를 맞으며 걸었다.
25km의 흙먼지보다 사람의 말 한마디가 더 무겁고 더 아프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배웠다.
한국인 특유의 ‘하면 한다’ 근성으로 순례길까지 온 사람들이고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다는 것,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전 회사의 투어에서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크고 작은 폭풍이 이 회사 투어에서는 매일매일 터졌다.
나는 그저 조용히 걸으며 일하고 싶은데, 여기는 무슨 매일이 재난영화 촬영장이었다.
그렇게,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 두 번째 악몽이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중반쯤
MS언니가 길을 걷다 넘어졌다.
손에 힘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해서 병원 가셔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 그것만 빼면 괜찮다고 해서 며칠 지켜보기로 하고 매일 안부를 묻는 중 호텔 체크인 하는 날 정신이 없어서 '손이 어떠시냐'는 인사를 못 건넨 것이 화근이었다.
MS 언니는 당장 회사에 전화를 해서 '내가 챙겨주지 않아서 서럽다고' 하소연을 했고 난감한 회사 담당자는 또 나에게 다시 연락해서 제발 좀 잘 챙겨 드리라고 사정사정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병원은 거부해서 약국에서 붕대랑 연고 등을 사드리고 알베르게에서 얼음팩 구해 주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상태 체크하는 것 밖에 없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챙기라는 것인가?
손님들이 25명이다.
MS 언니는 그중에서 자기가 환자라며 특별대우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한국 가서 병원을 가겠다는 MS언니는 결국 여정의 막바지로 치닫는 '산티아고'에서 꼭 병원을 가야겠다고 고집한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것도 반드시 '나와 함께'
한국에서 진료를 받으면 보험금을 80프로 정도밖에 못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쌩돈 낼 수는 없지'
그 때문에 손님들은 산티아고에서 자유시간을 가진 후 나 없이 버스 타고 가서 호텔 체크인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 사실을 병원에서 단톡방에 적으며 체크인 방법을 설명하는 올린 내용을 본 MS 언니는 역정을 냈다.
'아니, 병원 갔다고 적으면 사람들이 전부 나를 원망할 거 아냐. 당장 지우고 문구 바꿔'
이런 문제로 다음날 마드리드에서 병원 가자고 제안을 해도 거부하던 이유가 바로 마드리드에서 쇼핑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그녀는 병원에서 작정한 듯 나를 원망했다.
'내가 손에 힘이 안 들어가는 줄 알면서도 가방 한번 안 날라주냐? 나 진짜 섭섭했어'
한국 사람들은 호의를 한번 베풀면 권리로 알기 때문에, 한번 서비스받은 것을 못 받으면 섭섭해하는 현상으로 이런 류의 서비스는 절대 제공해서는 안되는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 가이드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래야 40여 일을 버티기 때문이다.
귀국해서 그녀는 회사와 나 때문에 여행을 망쳤다며 전액환불을 요구하며 여행사와 싸우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우쭈쭈 하며 다량의 진상을 배출했던 그 회사에서 난 짤렸다.
하루하루가 억울해서 페이스북에 솔직한 심정을 담은것도 화근이었지만,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회사에서 괴물들을 접하니 미련 따위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환상이 깨졌다.
40여일을 ㅂㄹ 의심커플, MS 언니, 그 외에 순번을 정해 놓은듯 돌아가며 진상을 부리던 손님들 때문에 우는 날이 더 많았고 술도 퍼마시고, 제발 시간아 빨리 가라 매일 기도하며 잠들었던 최악의 손님들을 만난 여행이라 더이상 미련이 없었다.
그저, 정말 가고 싶었던 여행사에서 한번 일해보고 그 실체를 알게 된것으로 만족할 뿐
그 이듬해 우연한 기회로 그 회사와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진행한 인솔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회사는 가능하면 내부 직원을 출장 보내고, 부족할 때만 외부 인솔자를 저렴하게 부르는 시스템이라 오래 일하는 인솔자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 인솔자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을 전해 들었다.
그해부터 그 회사는 ‘멘탈이 약한’ 여자 인솔자는 절대 뽑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아마 나도 그 결정에 한몫했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싸했다.
정말 문제는 ‘멘탈이 약한 여자 인솔자’였을까?
아니면, 손님을 ‘황제’처럼 떠받들며 그 이면에서 끊임없이 괴물을 길러내던 회사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였을까?
돌이켜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길이 더 이상 사람만 걸어가는 길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각자의 욕망, 불안, 갑질, 억울함, 기대치, 결핍이 뒤섞여 매일같이 폭발했다.
회사와 손님의 조건 속에서 ‘용기’란 무엇인지, ‘버틴다’는 것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배웠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확신하게 되었다.
문제는 결코 인솔자의 멘탈이 아니라, 그 멘탈을 갈아 넣어야만 굴러가는 시스템의 구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