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네 번째 휴직을 마치고 막 복직했습니다.

출근과 머릿결의 상관 관계

by 서윤


집에서 뛰쳐 나오다시피 달려서 출입문이 닫히기 직전, 겨우 버스에 올라탔다. 이 시간대가 출근 버스 마지막 배차라서 놓치면 큰일인데, 휴 다행이다. 내릴 때 최대한 빠르게 내릴 수 있도록 앞쪽 자리에 앉아 헉헉거리는 숨을 가다듬는다.


문득 떠오른다. 해가 뜨기 전 어둠속에서 매서운 바람을 가르며 출근 버스를 타러 가던 나. 버스 놓칠까봐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한 채로 집에서 나오면 버스까지 걸어 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리카락 끝이 얼어 붙었다. 그렇게 출근하던 지난 시간들.


머리카락을 말리는 건 사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일이다. 그 5분의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거다. 그땐 내 마음의 여유가 단 1분도 없었던 것 같다.

하루를 살아내기에도 바빴다. 회사에선 오늘 꼭 해야하는 일들만을 했고, 퇴근길에도 아이들 셋 알림장을 보아가며 오늘 꼭 챙겨야 하는 것들만 생각하기에도 벅찼다. 내일이란 없었다. 그저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으로도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그렇게 바늘 꽂을 틈도 없이 워킹맘으로 하루를, 일주일을, 일년을 그리고 11년을 버텼다.


첫째를 낳아 키우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샤워하고 머리를 감을 때 린스를 하지 않고 건너뛰기 시작했던 게. 린스를 하면 머리카락이 미끌거려 오래 헹궈내야 하는데 그 시간이 아까웠다. 공을 들여 겨우 재운 아이가 깨서 울기 전에 얼른 샤워를 마쳐야 했기에 린스를 한다는 건 그 당시 나에게 사치에 가까운 행위였다. 그때 린스를 끊었다.


다시 린스를 하기 시작한 건 막내를 어린이집 보내면서부터다. 무슨 일이든 세 번 정도 반복하면 전에 없던 여유가 생기는 건 삶의 이치인가보다. 육아도 그랬다. 첫째, 둘째를 키울 땐 없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적인 여유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맞을 것이다. 린스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고, 내 마음만큼이나 뻣뻣하기만 했던 머리카락도 거의 8년만에 부드러움을 되찾았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머릿결은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매일 새벽에 출근 버스를 타야 했기에 머리카락 말릴 정도의 여유까진 없었다.


3년 전, 막내의 초등입학과 함께 결정했던 네 번째 휴직이 내게 준 의미는 찬찬히 따로 정리해야 할 만큼 실로 엄청나게 컸다. 휴직기간동안 나는 성장했고, 린스도 아닌 무려 트리트먼트제를 머리에 바르고 잠시 기다렸다가 씻어낼 만큼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그 뿐 아니다. 머리카락 고드름이 생기던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에어랩으로 컬까지 만들어 외출할 정도로 삶의 질이 수직 상승했다.

나를 내려놓고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지난 십 여년의 긴 터널을 지나 맞이한 3년의 쉼은 머릿결 뿐 아니라 내 마음의 윤기도 되찾아 준 시간이었다.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되면서 같은 듯 하지만 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은 아름다웠고, 세상은 살 만했으며, 아침에 눈을 뜨면 기대감과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데,


복직 2주차, 린스할 시간이 다시 사라져버린 기분이었다. 마냥 슬픈 것만은 아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고,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법이니까. 아이들 건강하게 잘 크고 있고, 복직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머리는 밤에 자기 전에 감아 충분히 말리고 자는 요령도 생겼다. 물론 트리트먼트제도 매일 사용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과 감정들을 글로 쓸 수 있어 기쁘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하나하나 헤쳐 나가면서 나는 해 나갈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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