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육아의 시작과 끝

이제는 말할 수 있다.

by 서윤

둘째가 18개월쯤 되었을 때다. 회사 복직일은 점점 다가오는데, 아파트 게시판에 시터 이모님을 구한다고 올린 글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반적으로는 여러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 당시 우리 부부에겐 매우 심플한 문제였다. 육아휴직을 다 소진한 내가 퇴직하거나, 육아휴직이 사용 가능한 남편이 휴직을 하거나.


며칠 고민한 끝에 남편이 육휴를 사용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는 그때가 어언 십여 년 전이었던지라 아빠 육휴 사용 선례는 많지 않았었다. 주변에서의 반응도 남편의 육휴를 지지하는 의견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려왔었다. 휴직해도 (승진이나 앞으로의 직장생활이) 괜찮겠어? 하는 우려 섞인 반응들.


사회적 시선이 그러했던 시절, 내 아들이 육아휴직계를 내고 종일 아기를 돌보는 것이 누구보다 마음 편치 않으셨던 어머님께서 나서 주셨다. 딱 일 년의 시간을 줄 터이니 이모님을 구하든, 내가 퇴사를 하든 결정을 하라는 선언과 함께 할머니의 육아가 시작되었다. 시댁에서 우리 집까지의 거리가 꽤 멀었기에 어머님은 아버님과 자연스레 주말 부부 생활을 하시게 되었고, 우리는 어머님과 주 5일 동거 생활을 하게 되었다.


결혼 전, 처음 인사를 드렸던 때부터 시어머님은 나를 유독 예뻐해 주셨다. 여러모로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 있는 나는, 그런 어머님께 한없이 감사했고 성심성의껏 그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다 보니 며느리인 나를 마치 딸을 챙기듯이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겨주셨고, 나 역시도 매일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그땐 몰랐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있어 적당한 거리는 꼭 필요하다는 것을.


함께 생활하기 전, 가끔씩 찾아뵐 땐 적당한 거리를 두지 않고 딱 붙어있는 고슴도치들이어도 그럭저럭 괜찮았었다. 나를 많이 아껴 주셨고 편하게 대해주시니, 가끔 지나치게 솔직히 하시는 말씀에 (이를테면 ‘넌 살은 도대체 언제 빠지는 거니? 티브이 보니 연예인들은 아이 낳고도 날씬하던데’) 상처를 받아도, 그 다음번에 뵐 때까지 상처가 회복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같이 사니 얘기가 달라졌다.


나도, 어머님도 의도하진 않았지만 서로에게 배려가 부족한 말들로 상처를 주고받고,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마음에 피가 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평소에 아무리 사이가 좋은 관계여도 같이 산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시어머님과 동거생활을 하고 나서야 나는 절감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는데, 나는 나대로,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상대방이 이렇게 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각자의 무의식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님 입장에서는 아들, 며느리 생각해서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당신의 소중한 일상을 포기하고 멀리 내려와 손주들 돌보며 희생하고 계신 거였다. 그러니 아들 며느리가 하는 말들에 서운하셨던 것 같다. 별 것 아닌 사소한 부탁이나 당부라 할지라도 서운하게 들리셨을 것 같다. 나는 나대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지 않는 어머님이 서운했고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대화가 줄어들고, 급기야는 어머님이 주무시고 나면 귀가하여, 아직 잠에서 깨지 않으신 아침 일찍 출근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야 내가 살 것 같아서.


애초에 계획은 일 년만 봐주신다고 했지만, 그 절반인 반년이 조금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 고모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우리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는 거다. 몸과 마음이 힘드셨던 어머님이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아이들 고모를 우리 집에 불러놓고 당신은 짐을 챙겨 홀연히 가 버리셨다. 우리와는 단 한마디의 상의도, 통보도 없이.


할머니의 육아는 그렇게 7개월 만에 끝이 났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는 나도 회사일 하며 어린아이들 챙기느라 체력과 집중력을 다 써버려서 어머님의 마음이 어떠실지는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어머님 마음을 조금만 이해했더라면, 아이들 돌봐 주셔서,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조금만 더 표현했더라면, 그렇게까지 섭섭하진 않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건, 거창한 표현이나 물질적인 보상이 아닌, 진심으로 건넨 작은 말 한마디로부터였는데... 그땐 그 작은 한마디를 건넬 만큼의 여유가 내 마음엔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가 꼭 필요하다는 인생의 진리도 깨닫기 전이었다. 여러모로 부족한 나였다.


지금도 가끔 첫째 아이는 이야기한다. 그때 할머니가 해 주셨던 계란초밥은 정말 최고였다고. 할머니는 유치원 종일반 하원하러 일찍 와주셔서 좋았다고. 아이의 기억 속엔 할머니와의 좋은 추억만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어머님, 그때 참 고생 많으셨다고. 감사하다고. 그때 어머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아직까지 직장 생활 유지할 수 있었다고. 그땐 한없이 속상하고 어머님이 원망스럽고 조금 미워했던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한결 너그러워질 수 있는 것. 나이가 든다는 건 서글픈 일이지만 좋은 점도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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