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만 이런가요?

나를 성장시키는 아이

by 서윤


지구 반대편의 소식도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기다림이 필요 없어진 세상을 살고 있지만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는 것’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육아에 있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첫째 육아 휴직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둘째 임신 소식을 부서원들에게 알렸다. 복직하고 최소 2년 이상은 그래도 회사일에 매진하고 가지려던 우리 계획보다 일찍 찾아온 신의 두 번째 선물은 어서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나 보다.


”죄송한데, 저 둘째를 가져서 육아휴직을 써야 할 것 같아요 “

지금 같은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인가’ 하며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추가로 내 업무를 분담하게 하는 것은 ‘죄송한’ 일이 맞았다. 나로 인해 누군가는 원래 하던 업무에 추가로 내가 하던 일까지 떠안아야 할 것이기에.


그렇게 다시 육아휴직을 하고 둘째 아이 육아에 집중했다. 첫째 때는 처음 해보는 육아라 힘들었지만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니 당시의 나는 ’ 육아 경력이 있는 엄마‘라는 생각에 자만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간파했다는 듯이 우리 둘째는, 신중하고 조심성이 있는 첫째의 성향과는 너무나도 다른 매력을 가진 아이였다. -이제 와서 매력이라고 표현함을 고백한다-


가령 새로운 공간에 가면, 엄마 품에 안겨서 찬찬히 둘러보고 섣불리 움직이지 않던 첫째와 다르게 둘째는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일단 무엇에든 다가가고 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놀잇감인 것 마냥 만져보고 흔들어 보고 탐색을 했다. 첫째 아이가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었다면, 둘째 아이는 활동가 기질을 타고났음이 분명했다. 저마다 다른 아이의 타고난 성향인데 그리고 사람마다 다른 게 당연한 건데, 그땐 참 힘들었다.


마트 장난감 코너에 가서 떼를 쓰다가 드러눕는, 티브이에서 보던 아이가 바로 내 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육아책에서 보았던 대로 행동하지 않는 아이의 작은 몸짓과 반응이 그때의 나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한참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아이의 그런 행동조차도 귀엽고, 가서 꽉 안아주고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땐 그러지 못했다. 떼를 쓰고 드러눕는 아이를 보면 ‘얘는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남들 보기 창피하게’ 하는 생각이 들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민망하고 부끄러웠던 것 같다. 사실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아이의 그런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처럼

‘에고 아이가 뭐가 맘에 안 드나 보다. 저렇게 떼쓰는 것도 한때인데 참 귀엽네 ‘

하며 미소로 넘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타인의 시선이 왜 그렇게 따갑게만 느껴졌는지, 역시 사람은 자신의 그릇만큼만 담을 수 있는 것 같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드러누워있는 아이옆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내밀고 “우리 시은이, 속상했어?” 하며 아이를 일으켜 한참 동안 꼭 안아줄 것 같다. 공공장소인 마트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거라는 훈육이나 집에 장난감이 이미 충분히 많이 있지 않냐는 설득은 속상한 아이의 마음이 가라앉은 후에 해도 된다. 엄마인 나와 아이와의 관계-사랑과 신뢰-가 최우선이니까. 무언가 불편하고 못마땅한 마음에 드러누워 봤지만 엄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있다고 아이가 느낀다면, 삐뚤어지려는 마음도 어느새 스르르 녹아내릴 것이고 가르침은 그 이후에 해도 충분한 것 같다.


이 단순한 깨달음을 얻기까지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육아책에서 본 대로, 주변 엄마들의 조언대로 했지만 내 아이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 마음 상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느덧 사춘기에 가까운 아이라서 가끔 이유 없이 짜증 부리고 툴툴대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릴 적 마트에 드러눕던 그때를 회상하며 ’ 잠시 멈추어 생각’해본다. 그러면 아이의 마음이 헤아려지고 인상을 쓰고 있는 표정마저도 한없이 사랑스러워진다. 세명의 아이가 간장 종지만 하던 내 그릇을 키워준 게 틀림없다.


나를 성장시키는 아이들, 오스트리아 여행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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