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중반, 현타가 왔습니다.

안정과 변화 사이

by 서윤

사람이 무얼 하든지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요즘 마음이 떠 있어서인지 출근해서 실험을 진행하는, 수도 없이 해왔기에 익숙한 이 일이 이토록 싫은 건 또 오랜만이었다. 회의감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한없이 우울해질 뻔도 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지금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지, 이걸 하면서 내가 놓치고 있는 건 뭔지 ‘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생각을 거듭하자 느껴진 건 극심한 피로감이었다. 전 날 있었던 팀 회식을 마치고 자정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서 새벽 출근 버스를 타느라 네 시간 남짓 잠을 잤던 터라 체력은 방전되기 직전의 상태이긴 했다.

<출처 - Unsplash>

오랜만에 보는 유기용제 지정폐기물 수거 봉투와 에탄올 와이퍼, 케미컬 병마다 인체독성을 표시해 주는 해골 모양이 그려진 라벨, 그리고 코를 찌르는 케미컬 냄새. 내가 선택한 전공이었고, 전공 수업을 듣던 이십 대부터 접해왔던 익숙한 일인데, 오늘따라 한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마음에서 멀어져서 아니 멀어지고 싶어서였을까. 이젠 이 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물론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이 없는 건 아니다. 한때는 지금 내가 연구하고 개발 중인 이 재료가, 이 제품이 세계 최초이고 최고의 성능을 내고 있다는 것에 설레기도 했고, 운동선수에 비유하자면 난 지금,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것과 같다며 혼자 취해 가슴 벅차기도 했다. 결과물로 전시회에 참여라도 하게 되면 그간 고생했던 노력들이 떠오르며 말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환희를 맛보기도 했다.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드는데 내가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고 보람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이라고, 지난 3년의 휴직 기간 동안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 앞으로도 꾸준히 정성을 들여서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았기 때문일까. 20여 년간 해왔던 이 일이 이토록 멀게 느껴지는 이유가.


”잘 하는 일을 할래? 좋아하는 일을 할래?“

어느덧 인생의 중반에 접어든 나에게 누군가가 던진 질문 같았다. 오랫동안 지속해 왔기에 익숙하지만, 새로운 재미랄 것은 없는 일과 이제 막 시작해서 호기심과 흥미가 나날이 더해지고 있는 일.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는 결정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지금, 쏟아지는 함박눈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 밖 풍경처럼 아직은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인지하기 시작한 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앞으로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고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조금 더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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