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찾아온 신의 세 번째 선물

막내 없었음 어쩔 뻔했어.

by 서윤

“엄마는 혹시 모르니까 검사실 밖에 나가 있어요”

“아니에요 선생님, 임신 가능성 전혀 없으니 괜찮아요. 아이 옆에 있겠습니다.”


아들 부럽지 않게 에너지 넘치고 활발한 둘째 딸은 돌이 되기 전부터 걷기 시작하더니 돌이 지나면서는 주로 뛰어다니고, 날아다녔다. 한 번은 놀이터에서 넘어지면서 발을 삐끗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발등이 예사롭지 않게 붓고 멍이 심하게 들었다. 아이들 손발이 다치면 행여라도 성장점까지 다쳤을까 봐 걱정이 크게 되어 정형외과에 찾아가 엑스레이를 찍는데, 촬영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그렇게 5일 정도 간격을 두고 엑스레이 촬영을 두 차례 더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육아에 힘들었던 그때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부서 회식도 놓치지 않고 참석했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 아닌가. 그런 날은 공식적으로 늦은 귀가를 해도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덜 들었으니, 오랜 가뭄에 단비 같던 회식을 놓치기엔 섭섭했다. 중식 코스 요리가 나오는 식당에서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과 어울리는, 한 모금 삼킬 때마다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묘한 매력의 고량주도 기분 좋게 곁들였었다.


“헉, 어떡해!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임신이었다. 반갑고 기쁜 마음에 앞서 두려움이 먼저 밀려왔다.

‘둘째 엑스레이 찍을 때 계속 옆에 있었는데... 회식 때 홀짝홀짝 마셨던 고량주는 또 어쩌고..’

초음파로 아기집과 우렁찬 심장 박동 소리를 확인한 후에 흐뭇한 미소로 임신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시던 의사 선생님께 나는, 굳은 표정으로 걱정이 된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탁상 달력을 내미시더니 엑스레이 촬영한 날짜를 찍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긴장한 나에게 차분히 설명해 주셨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임신인 거 알았으니까 지금부터 조심하면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천만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과연 이 아이가 무사히 잘 자랄 수 있을 것인지, 건강히 낳을 수 있을 것인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임신 초기를 보냈다.


안정기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고, 회사에도 그제야 셋째 임신 사실을 알렸다. 그동안 해 온 모든 과제가 중요했었지만, 그때야말로 바로 다음 해에 시장에 제품이 반드시 나와야 하는,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를 진행 중이었다. 고객과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주말근무도, 시도 때도 없는 야근도 소화해야 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일했다. 토요일 오전에라도 회의가 잡히면 왕복 두 시간 거리를 운전해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던 일들도 여럿이 힘을 모아 하나씩 헤쳐나갈 때의 그 성취감이 있었기에 임산부라는 정체성도 잊고 그렇게 열정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삼세번째였건만 출산의 고통만큼은 이전 두 번의 경험이 무색할 정도로, 마치 처음 겪는 것처럼 똑같이 아팠다. 어쩌면 산모 나이에 비례하여 더 강도 높은 고통이 따라오는 것일까. 죽을 것 같은 고통 끝에 우리 곁을 찾아와 준 ‘만년 귀염둥이’ 막내는 울음소리부터 우렁찼다.

“ 3월 8일 오전 11시 29분, 4.28kg의 여자 아이 순산하셨습니다 “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에 이어 남편은 똑같은 질문을 무려 세 번이나 했다.

“몇 킬로요?”

“몇 키로라고요?”

“몇 킬로요? “


4.28kg, 나는 우량아를 낳았다. 자연분만으로.

셋째였기에 가능했으리라.

뽀얀 속싸개에 매미처럼 싸여 곤히 잠들어 있는 신생아실 여러 명의 아기들 가운데에서도 4.28kg 은 가히 빛날 만했다. 통통한 어깨와 포근한 등, 그리고 따듯한 온기 덕분에 막내를 안고 있으면 내가 먼저 잠에 빠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셋째는 우리 곁으로 왔다.



안녕? 귀염둥이 셋째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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