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괜찮아져야 했기에,
“안녕하세요, 많이 힘드시죠”
전화로 미리 진료 예약을 했다. 초진의 경우 한 시간가량 상담이 진행된다는 안내를 받고 회사 근무 시간을 조정해 잠시 외출을 나왔다. 처음으로 찾아간 병원의 낯선 분위기에 나는 사뭇 긴장해 있었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 선생님의 맞은편 의자에 미처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에 건넨 말 한마디에 나는 저항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그때의 내 마음 상태를 대변해 주는 것이었으리라.
나의 힘듦을 알아봐 준 누군가의 그 한마디에 꾹꾹 눌러 참으며 버텨오던 감정이 무너져 서럽게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어떤 연유로 병원을 찾게 되었는지에 대해 조심스럽고도 차분하게 물으시는 선생님의 인상은 참 편안해 보였다. 눈물을 쏟으며 감정에 복받쳐 있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육아를 도와주러 오신 시어머님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우울증이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말씀하시는 데서 받은 상처들이 누적이 되었다. 나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매일매일이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정신과 선생님은 이런 나의 하소연 또는 푸념 같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고 내가 느꼈던 감정에 공감해 주셨다.
지금 처해있는 문제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내가 성장한 배경에 대한 이야기(어린 시절의 가정환경, 부모님의 성향, 부모님과의 관계 등)라던지, 남편과 시부모님에 대한 배경 설명까지 가계도를 그려가며 질문하셨고 그 질문에 나는, 성실히 응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듯 지금의 갈등이 생기기까지 분명 이유가 있을테지. 그리고 원인을 알면 해결방법도 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나는 이전부터 쌓여온 수많은 일들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내가 기억하는 대로 설명드렸다.
한 시간 동안 쉼 없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내 앞엔 눈물 콧물을 닦은 휴지가 수북하게 쌓였다. 진료 첫날이라서 선생님은 주로 내 이야기를 듣는 데 집중해 주셨다. 사실 들어주시는 것 외에 별다른 처방이라던가 이렇다 할 솔루션을 제시해 준 것이 아니었는데, 신기하게도 진료실에서 나오는 발걸음은 조금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무언가 꽉 막혀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운 기분이었다면, 갑자기 어딘지 모를 조그마한 숨구멍이 뚫린 듯이 느껴졌다. 그 구멍 덕분에 숨 쉬는 것이 아주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 후로도 일주일에 한 번씩, 몇 번 더 찾아가 진료 상담을 했다. 상담이라기보다는 나의 하소연을 선생님은 집중해서 들어주셨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그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
시부모님,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가까운 사이이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서윤님 인생에서
크게 중요한 분들은 아닐 수도 있어요.
우선은 물리적으로 거리를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생활해 보면서
서윤님의 가족에 집중해 보세요.
그래도 됩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잘하고 싶었고,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었던 내 욕심을 조금 덜어내는 계기가 되었던 나의 첫 진료였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회사에서 내게 맡겨진 업무에 있어서도 어느 것 하나 놓지 못하고 다 잘하고 싶었다. 나는 욕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그 욕심이 나 스스로를 가뒀고, 그 좁은 세상에서 나는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세우며 주변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내가 정신과 상담을 가족들 모르게 받으러 다니는 동안, 시어머님은 우리 집에서 손주를 돌봐 주시며 생활하던 주 5일 동거 생활을 정리하고 짐을 챙겨서 홀연히 귀가하셨다. 나와 남편에게 단 한마디의 의논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그리고 그날 회사에서 일을 하던 나는, 친정엄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화장실에 갔다가 한 시간이 넘도록 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엉엉 우느라.
“너 괜찮냐?
니네 시어머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드라. 오랜만에 전화가 와서 반가웠는데, 목소리가 안좋드라고. 무슨 일 있냐니까, 손주들 봐주러 내려온 건데 아들 며느리한테 많이 서운하시데. 자기 그동안 힘들었던 얘기를 하시드라고..
예, 예, 그렇지요.. 하면서 니네 시어머니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나는 우리 딸이 그렇게 걱정이 될 수가 없어. 당신이 이렇게 힘들면 우리 딸은 오죽할까. 손위 어른인 당신도 이런데, 우리 딸은....
그동안 너 얼마나 힘들었냐. 힘들다고 말을 하지. 엄마한테 그런 얘기도 안 하고 잘 지낸다고만 하더니 내가 속이 짠해서 가만있을 수가 있어야지. 너 회사에서 바쁠 거 알면서도 내가 전화를 했다 “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걱정하실까 봐 애써 태연한 척 속으로만 눈물을 삼켰다. 난 괜찮다고, 엄마는 걱정 마시라고 짧게 전화를 끊은 뒤에 화장실 구석 칸에 들어가 조용히, 한동안을 울었다. 엄마는 그때 대상포진을 앓고 계셨다. 힘들어하고 계셨지만, 시댁에까지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앓고 계신 걸 알리지 말라고 하셨었는데, 그런 상황도 모르고 시어머님은 본인 힘듦만을 토로하려고 사돈한테 전화를 하다니. 마음속에 남아있던 작은 존경심마저 사라져 버렸다.
시어머님이 그렇게 귀가하신 후 시아버님께 문자 연락을 몇 차례 받았다. 니들이 그러면 안 되는 거라며 남편과 나를 혼내시는 내용의 문자였다. 철저히 어머님 입장에서 아버님은 그러실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나는 시댁과 절연했다.
전화를 하는 것도, 찾아가 뵙는 것도, 그게 하물며 연중행사인 민족 대이동의 명절이라고 할지라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가면을 쓰고 억지로 웃으며 인사할 수가 없었다. 내 상태가 그러했기에, 일단은 내가 먼저 괜찮아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