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간다 해도 육아휴직
어느 날 갑자기 짐 싸서 떠나신 시어머니의 빈자리는 컸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다행히도 아이들 고모가 때마침 이직을 준비 중이어서 우리 집으로 내려와 임시로 아이들 양육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임시방편’ 일뿐이었다. 맞벌이 부부의 두 아이들 육아를 도와줄 누군가를 찾아야만 했다.
상황은 다시 7개월 전, 시어머니가 도와주러 내려오시기 전으로 돌아갔다. 내 복직일을 앞두고 했던 고민을 다시 해야 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남편이 육아 휴직을 하는 것.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셋째의 출산까지는 8개월가량 남아 있었고, 셋째 출산 일이 가까워지면 내가 쉬게 될 터이니 그때까지 첫째와 둘째의 양육을 남편이 도맡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물론 남편도 육아휴직을 쓰기까지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지금은 강산이 변해 아빠들도 육아 휴직을 많이들 사용하고, 지자체에서도 아빠 육아휴직을 적극 권하는 광고 문구가 버스에도 실려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점점 심화되고 있는 출산율 감소 현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면서 저출산 대응 정책의 일환으로 제안되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부터 십여 년 전이었으니, 남편 부서에서도 아빠가 육아휴직을 사용한 전례가 없었다. 남편조차도 처음엔 “내가 쉴게” 라며 호기롭게 내뱉었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이게 맞나, 이래도 되나 ‘ 하는 우려가 때때로 본인도 모르는 사이 얼굴 표정에 드러나기도 했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부서장 면담만 일주일도 넘게 했다. 당사자도 그래도 되는지 ‘확신이 없는’ 육아휴직이었으니 부서장도 남편의 업무상 공백기간이 커리어에 불리한 점이라도 있을까 싶어 우려가 되는 건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남편의 상사는 이렇게 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인지에 대해 진심 어린 고민을 함께 해주셨고, 필요하다면 지인을 통해 베이비 시터를 알아봐 주시겠다고까지 제안하셨다. 예상하지 못했던 그 호의에서 나는 따뜻한 온기를 느꼈고, 차가웠던 마음에 잠시나마 따순바람이 들어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여러 상황이 맞아야 가능한 일이었고, 결국 남편이 휴직에 들어갔다.
첫째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둘째 아이와 동네 놀이터를 순회하며 보내다가 다시 첫째 유치원 하원을 시키고, 두 아이들의 간식과 저녁 식사를 챙기다 보면 하루가 다 갔을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7개월여간 전업 주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유아기에 있는 아이들 둘을 돌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참 열심히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시간이 남편에게도 직장 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회사 업무에서 벗어난 시간이었다. 일종의 안식년이라고 해야 할까. 휴직이 끝나갈 무렵에는 둘째도 기관에 다니게 되어 아이들 둘 다 맡기고 나면 짧게나마 자유 시간이 주어졌고 혼자 조조 영화를 보고 오기도 하고, 서점에 들러 좋아하는 책을 보다 오기도 했다. 육아휴직이 아니었다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남편은 늘 말한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두 아이들이라 방문 걸어 잠그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인데, 두 딸들은 주말이 되면 여전히 아빠랑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아마도 유아기 때 함께 보냈던 그 시간들이 주춧돌이 되어준 것은 아닐까 싶다. 그 위에 차곡차곡 쌓여 온 아이들과 아빠가 같이 보낸 날들이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 한편에 든든히 자리 잡았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주위에 가끔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남편은 늘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육아휴직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 보라고, 인생에서 다시 안 올 시간들이라고. 자신은 육아휴직 사용하길 정말 잘했다며 아빠 육아휴직 권고 전도사가 되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육아 휴직을 사용할 거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