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픈 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에요.
며칠 전 막내 하교시간즈음에 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평소에 전화를 자주 하는 아이가 아닌지라 겁부터 덜컥 났다. 엄마들이 가진 본능적인 어떤 ‘감’이었던 것 같다. “엄마, 흑 흑” 아니나 다를까, 첫마디에서부터 가슴이 철렁했다.
“흑 흑 나 넘어졌어”
“에고 그랬어? 아프겠다. 많이 다쳤어? 괜찮아?”
“어, 아파. 많이 아파.”
“어딘데? 집까지 올 수 있겠어? “
“응, 거의 집 앞에서 넘어졌어, 이제 엘리베이터 타 흑 흑”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의 목소리에서 묻어져 나오는 분위기만으로도 상황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대충 예상이 되곤 한다. 이번엔 제법 심하게 다친 듯했다.
울먹이며 들어오는 아이의 무릎은 마치 눈물을 흘리는 듯이, 벌건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려 흰 양말을 물들이고 있었다.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 크게 살갗이 벗겨져 나가 피부 아래층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아이를 셋 키우는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상황이 여전히 두렵고 떨린다. 다만 의식적으로 나의 걱정과 불안을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엄마인 내가 겁을 먹고 불안해하면, 아이는 몇 배 더 불안할 것을 알기에. 애써 침착하게, 나의 불안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아직 병원 열었으니까 가서 소독하고 치료받고 오면 곧 나을 거라고,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말하며 가까운 피부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왔다.
넘어져서 다친 것 치고는 큰 상처였고, 다 나을 때까지 앞으로 불편할 일상생활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그려졌지만, 그래도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났다. 아이들 키우며 마음 졸이던 지난 순간들.
큰아이 세 살 때 감기 합병증이 와서 고열로 처음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했던 때, 내가 대신 아팠으면 했다. 아이의 그 작은 손에 꽂힌 주삿바늘과 고열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 피를 말린다 ‘는 표현이 이런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나 자신 외에 타인을 위해 이토록 간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 참 신기했다. 모성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내가 이렇게도 이타적일 수가 있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리고 둘째 아이 10개월쯤에 판정받은 심장 이상, 정확한 병명은 심방중격결손증이었다. 그리고 몇 년 간 추적 관찰하며 정기적으로 병원 검진을 다녔다. 돌도 안된 아이가 유독 성장이 더딘 것 같고, 비염 증세도 나아지지 않아 소아과 진료 상담을 하다가 알게 된 증세였다. 대학병원 진료 소견서를 들고 아기띠에서 잠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혼자 찾아갔던 날, 병명을 듣고 나오는 길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울음은 아마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둘째라고 태교도 한 번 하지 못했고, 첫째 돌보며 직장 다니며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아이의 증세가 내 탓인 것 같았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어도 내가 나를 탓했다. 엄마 자격도 없다며, 나 때문에 우리 아이가 아픈 거라며.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견디기 위해 교회에도 갔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가 본 적 없던 교회를 둘째 아이 심장 이상 판정을 받고 나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이끌려 아이 둘을 데리고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러 갔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나는 엄마이니까,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만 5세가 되던 해, 정기검진에서 엄마가 기도를 열심히 했나 보다고, 기적처럼 판막이 닫혔다고. 이제 더 이상 검진받으러 안 와도 되겠다는 담당의사 선생님의 소견을 들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럽고 감사해서 마지막 진료를 받고 나오는 길에도 나는, 처음 그곳을 찾아갔던 날처럼 펑펑 울면서 나왔다. 그때와는 다른 종류의 눈물로.
“애들은 아프면서 크는 거야 “라는 옛말이 딱 맞다. 세 딸들도 크고 작은 병치레를 하며 이만큼 자랐다.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가 어디 있겠나. 아이들 아프면 불안하고 걱정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 하나가 있다. 아이가 아픈 건 엄마 탓이 아니다. 아이들은 원래 아프면서 크는 것이니 자책하지 말고, 아픈 아이 곁을 든든하게 지키며 정성껏 돌보는 일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아이는 원래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법이니 아이에게 더 큰 사랑을 주어 얼른 회복할 수 있도록 아이 곁을 지키는 것. 그거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