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함과 이별하기
"불안하지 않아요?"
"나중에 애한테 원망 들으면 어떡해? 지금이라도 얼른 학원 보내"
"세상이 변했어. 우리 때랑 달라. 학원 보내야지."
"대단하다. 정말"
아이들 키우면서 지난 몇 년 간 가장 많이 들어온 이야기들이다. 요즘엔 시기가 더 빨라진 것 같긴 하지만, 보통은 초등 3, 4학년 정도가 되면 아이들의 수학, 영어 학원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한 한기 정도 먼저 배우는 건 선행도 아니란다. 그건 그냥 예습일 뿐. 대개는 2-3년 앞서서 배우는 것이라고. 그래야 중학교 때 고등학교 수학까지 다 마치고, 고등 수학은 그야말로 10번 정도 반복 학습을 해서 '씹어 먹을' 수준정도로 만들어 놓아야 한단다.
요즘은 너도 나도 다 그렇게 하기에, 안 하면 학교 수업에 따라가지 못한다며 지금이라도 빨리 학원 알아보고 보내라고, 친한 친구들은 나와 우리 아이를 걱정하며 조언한다. 나 역시도 그래야 하나 싶어 예전엔 마음이 몹시도 흔들렸다. 학원에 안 다니는 아이가 반에서 우리 아이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불안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가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입시 전문가도 아닌, 어쩌다 보니 아이들 셋을 낳아 아이들과 함께 성장 중인 대한민국의 엄마일 뿐이다.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접하게 된 요즈음 사교육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 내 결론은, 초등학생 때까지는 선행학습보다 더 중요하게 그 시기의 아이가 배워야 할 것들이 있으니 애먼 곳에 아이의 에너지를 쓰지 말자는 것이었다. 아이들도 체력에 한계가 있을 테니까.
현행 학습은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 맞추어서 전문가들이 짜 놓은 학업 커리큘럼이 아니겠는가. 몇 년 당겨서 미리 배우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중학생 나이가 되면 무리 없이 함수를 이해할 수 있고, 고등학생 정도 되면 미분과 적분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기에 단계에 맞춰 구성이 된 학습 내용일 텐데 선행을 꼭 해야 하는가? 물론 사람의 뇌는 지속적으로 훈련하면 발달하게 되어 있으니, 몇 년 동안 꾸준히 선행을 하면 따라갈 수는 있겠다만, 세상만사에 대가 없이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을까. 대가를 치러야 할진대,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며 사회성을 배우고, 때로는 좌절도 경험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도 배우는 등 놀이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닌데 이 모든 것을 배울 시간을 통째로 빼앗기는 것에 나는 몹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잘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그렇기에 공부는 때가 되어 스스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나의 불안한 마음도 점차 사라지게 된 것 같다.
"공부하는 거 힘들어서 선생님 도움 받고 싶으면 언제든 엄마한테 얘기해 줘. 엄마는 항상 (너 학원 알아볼) 준비하고 있을게."
친구들이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던 초3 때부터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는 말이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 실제로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이 들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에서 이미 다 배워온 터라 수업시간에 처음 배우는 우리 아이에겐 버거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배우기 전에 미리 예습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아이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날부터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 보면서 아이는 조금씩 자신에게 맞는 학습법을 찾아나가는 듯이 보였다.
첫째 아이의 성장을 함께 하며 입시 현실, 교육 현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 자식 키우는 부모의 고민들, 전력 질주를 강요당하는 아이들의 어려움까지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남들도 다 하니까,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쓸리기보다는 내 아이를 최우선으로 두고 고민하면 나는 언제나 답이 보였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정답이란 건 애초부터 없는 것이니까. 아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보고, 부모인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 그게 내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