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동시빵맛보기 - '다 쓴 교실'
한 달 동안 머물던 방을 떠나간다. ‘다 쓴 방’을 떠나려니 불현듯 떠오르는 지난 시간들, 아름답고 애틋한 기억들. 그러나 떠나는 자의 손은 게으를 수 없다. 떠난 뒤에 남겨지는 것이 없도록 흔적 지우기에 나서야 한다.
물병에 꽂아 두었던 꽃나무 가지를 땅으로 옮겨 꽂고, 방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 먼저 머물던 자의 냄새를 빼낸다.
책상도 원 위치. 잠시 내 공간이었지만, 이제 곧 다른 사람의 공간이 될 것이니 가급적 한 올의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고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다 쓴 교실’을 떠나가는 마음도 그럴 거다.
아름다운 뒷모습 남기기. 내가 주인이었던 책상과 사물함에서 ‘내 흔적 다 떼어내’는 것은 새 주인을 위한 예의이지만, 새 출발을 위한 준비이며 내가 보낸 공간과 시간을 귀하게 대접하는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숲, 산, 강, 바다, 화장실, 도서관... 내가 머물던 곳, 그 숱한 자리에서 내 흔적을 잘 지우고 떠나왔던가?
‘다 쓴 교실’을 읽으며 생각해 본다.
잘 치우고 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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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 동시집 『안 괜찮아, 야옹』 『아빠를 딱 하루만』 『아기 까치의 우산』 『꽃마중』,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동시를 읽고 쓰고 놀면서 보낸 시간을 담은 동시 놀이책 『신나는 동시 따 먹기』를 냈고, 그림책 『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 『그림 그리는 새』 『귀신 단단이의 동지 팥죽』 『누렁이의 정월 대보름』 『분홍 토끼의 추석』 등에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