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동시빵 맛보기 - '고인 뜻'
변장하고 온 스승
올여름 폭염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보는 더위였다.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잘 수가 없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데 열탕 속에 들어간 것처럼 얼굴이 벌게지며 금방 땀이 흘러내렸다.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마포 도서관까지 걸어가거나 마을버스를 타고 가곤 했다. 이번 여름에는 택시를 집 앞까지 불러 타고 도서관에 가곤 했다. 이것도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세상이 더운 기운 속에 푹 빠져 세상 만물이 무언가 고여있는 기분이었다. 답답한 더운 기운이 숨 막히게 몸을 조여 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고인 뜻>이란 시를 읽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느긋해졌다.
‘흐르기를 멈추고/ 작은 웅덩이에 고인 물// 도롱뇽 알들을/품어주고 있었다.’는 이 자연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내 생각에도 반짝 영감을 주었다.
좀 과하고 지나치긴 했지만 폭염은 폭염의 방식대로 나를 감싸고 안아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갑지 않긴 했지만, 폭염은 내게 어떤 말을 걸려 한 걸까. 올 폭염은 우리에게 무언가 내면을 잘 돌아보라는 말을 걸고 있는 것 같다. 변장하고 온 스승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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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복 : 동시 읽는 걸 좋아하는 동시빵가게 바지사장입니다. 시인들과 어린이 독자와 동시빵가게 만들면서 같이 재미있게 놀고 싶습니다. iyagibo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