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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Nov 09. 2022

약간 다른 시선 1

나의 아름다운 정원/심윤경


나이가 들면 과거를 떠올리는 순간이 많아진다는 데 정말 그렇다. 오늘도 어린 시절의 기억 한 조각을 꺼낸다. 그 즈음은 바람을 피우려다 들킨 아빠에게 큰 배신감을 느끼고 엄마가 집을 나가려고 마음먹기 직전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는 부모의 큰 다툼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본 지 6년이 넘었을 때였다. 그런 걸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묻고들 하는데 그건 나조차도 신기하다. 거의 매일 늦은 귀가를 하는 아빠를 마중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울던 4살 무렵부터 모조리 기억이 난다. 매일 밤 엄마를 기다리던 장소는 왕십리의 산동네, 칠이 다 벗겨진 파란 나무 대문 앞이었다.



어느 , 밤새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의 엄마와 동생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갔다. 나는 나와 동생만 들여보내고 끝날 때쯤 데리러 온다고 하면 절대 영화를  보겠다고 떼를  생각이었다. 엄마가 우리를 버리는 방법을 바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엄마는 옆자리에 앉았고 영화를 보면서 연신 흐느끼고 있었다.  당시 대히트를  [엄마 없는 하늘 아래]라는 영화였다. 영화   남매는 엄마가 죽고 아빠와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아빠마저 죽고 본격적으로 부모 없는 모진 세월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부모 없는 하늘 아래가 아니라 엄마 없는 하늘 아래로 제목을 지었을까. 사실 영화 속에서 아빠는 살아 있어도 아이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존재긴 했다. 아무튼 그날 엄마는 당신이 사라지면 우리 남매가 얼마나 불쌍해질지를 영화를 보면서 확인하는 마음이었던  같다. 엄마는 울어도 너무 울었다. 게다가 4살짜리 동생도 눈물이 터졌는데, 울면서  짧은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 눈나 자꾸 눈물이 .."


영화의 내용 때문이었는지, 동생 부부의 이혼을 막으려고 온 건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러 온 건지 모르는 큰고모의 등장 때문이었는지 그때 엄마는 집을 나가지 않았다.




어젯밤 2013년에 출간된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소설이었다. 화를 내면서도 밤새 끝장을 보게 되는 그런 소설이었다. 1977년의 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거의 모든 씬에는 막냇동생을 업고 집안일을 하고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젖동냥을 하는 착하고 의젓한 장남이 등장하는데 2013년의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도 비슷한 캐릭터가 있었다. 착해도 징하게 착한 장남 동구. 소설의 마지막에 어린 동구는 엄마를 위해 성질이 고약한 할머니를 끌어안는 희생을 한다. 본인의 선택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동구의 등을 떠미는 상황이었다. 36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영화에서 소설로 공간 이동만 했지 장남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착한 아이에게 감동만 받을 뿐 희생을 강요받은 아이의 마음에 있을 그늘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자식을 키울 준비가 되고 부모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딸을 낳으면서 왜 부모가 되려는지 생각해 본적도 없다. 그냥 순서를 기다린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다. 이제 내가 애를 낳을 차례구나. 뭐.. 그런.. 엄마가 되면 어떤 일들이 생길지 생각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출산을 했다. 나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 상태로 애를 키웠느니 매일 울고불고 난리였다. 어른들에게도 세상은 위험하고 심리적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러나 가정에서조차 보호막이 부실하다. 아무나 부모가 되고 시부모가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대통령이 되면 얼마나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간담이 서늘하다.


아무튼 난 소설의 마지막엔 착한 동구 말고 조금은 이기적인 동구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랬나 보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저자심윤경

출판한겨레출판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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