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설 Nov 12. 2024

딸에게 보낸 카톡  그리고 미발송

나같은 딸 편



설- 검사 결과 나왔어?

.

.

.

.

.

설-딸........?






그리고 미발송



딱 지금의 네 나이였어. 무슨 이유였는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가출을 했었어.  맞아. 가출을 하기에는 좀 나이가 많았지. 지금 생각하면 그건 단순한 무계획 여행이었어. 목적지가 없었으니 당연히 예약한 숙소도 없었지. 버스를 탈지 기차를 탈지조차 생각한 게 없는 지극히 충동적인 떠남이었어. 집을 나갈 만한 사건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냥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당시 엄마는 네 외할머니에게 불만은커녕 인간적인 측은함이 컸을 때였는데, 어째서 간다 온다 말도 없이 열흘 동안이나 집을 떠났을까. 삶이 공허하고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질 때 사람들은 종종 생존의 현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삶의 최전선이라는 아우성 가득한 시장통을 찾아간다잖아. 아마 그런 마음으로 떠난 걸 거야.

친구들은 사회에서 각자 자기 몫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사람으로 20대를 거의 다 보냈다는 것이 당혹스럽고 그런 나에게 화가 나고 실망도 컸어. 뜨겁고 치열한 삶을 원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내가 부담스러운 한편 준비 없이 맞을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몰려왔지. 중요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초조감에 쫓기는 시절이었어. 삶의 실체가 잡히지 않는 상태로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도 무서웠고 그러면서도 내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하는 스스로의 요구에 시달리는 중이었어.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잖아.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 하루아침에 견딜 수 없는 일이 되는 거.  짐작해 보니 그거고 떠남의 이유는 지금도 솔직히 잘 모르겠어.


처량한 모습이었을 거야. 어른들이 보기엔 좀 걱정스럽고 위험에 노출된 다 큰 처녀로 보였을 테지. 그렇게 혼자 지도에서 보고 이름만 알던 도시, 청주로 광주로 열흘을 떠돌았어. 밤이 되면 내가 자처한 일이라는 걸 잊고 집도 없는 여자가 된 것 마냥 막막한 마음이 들었지. 음식을 사 먹어도 왜 자꾸 배는 고픈지. 어둠이 내리는 낯선 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울면서도 당장 집에 갈 생각은 들지 않았어. 엄마가 나를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릴 걸 알면서 전화 한 통도 안 했어.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건 아마도 당시 나는 내 고통만 보였기 때문이겠지.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딸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던 할머니는 딸이 사라졌던 열흘 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지금 생각하면 불효도 그런 불효가 없네.

집 나온 지 5일쯤 지나니까 마음이 조금 달라지더라. 싫어서 못 견디겠던 것들이 그리운 것들로 변했어. 그건 집에 돌아올 때까지 줄곧 내 꽁무니를 따라다녔어. 들뜬 마음으로 집을 벗어나 모처럼 휴가를 즐기던 사람들도 집으로 향하는 버스나 비행기 안에서는 어쩐지 조금은 시무룩하고 우울한 표정이잖아. 저마다의 생각에 빠져 말수와 웃음이 줄어들고. 여행은 끝은 누구나 비슷비슷한 감정이 드는지 나 또한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만감이 교차하더라고.



일본의 작가 소도 아야코는 이런 말을 했어. 가정이란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맞이하며 목욕을 하게 해 주고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 주는 것이다.라고. 그날 할머니는 소노 아야코 같았어. 열흘 만에 딸을 만나고도 어디 갔었냐, 무슨 짓이냐, 왜 이제 왔냐는 말 같은 건 하지 않고 밥부터 차렸어. 허겁지겁 배를 채운 다음 집에 왔다는 안도감과 아랫목에서 느껴지는 뜨뜻한 기운에 슬슬 잠이 올 때쯤이었어. 할머니는 그제야 한마디를 하셨어. 딱 한 마디.


"너도 너 같은 딸을 낳아 키워봐라."


그때 나는 그 말이 얼마나 슬픈 말인지 모르고 그저 엄마들이 딸에게 하는 진심이 담긴 농담 또는 지난 열흘에 대한 원망 정도로 생각했어. 딱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는 말은 너 때문에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아 달라는 엄마의 마지막 항변이면서 소심한 복수였겠지.  엄마들의 소심한 복수는 왜 항상 당장은 실현이 불가능하고 딸이 엄마가 되어야만 실현이 되는 걸까.  안타깝게도 당신의 딸이 딸을 낳고 이런저런 마음고생을 하기도 전에 하늘로 가시는 경우도 드물게는 있으니까 모두 실현되는 것도 아니네. 네 외할머니처럼 말이야. 지야. 엄마는 요즘 그 시간 차가 많이 아프네.







네가 암 검사를 하던 날 너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마는 마음이 백 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았어.  며칠 뒤 결과가 나오는 날, 네가 의사를 만나기로 한 시간을 아는데, 지금쯤이면 결과를 들었을 텐데, 너에게 연락이 안 닿으니까 그야말로 정신이 아득해지더라. 연락이 닿지 않았던 두 시간은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앉은 것 같았어. 나쁜 결과를 받아 들고 어딘가에서 울고 있는 건 아닌지. 엄마를 안심시킬 방법을 궁리하느라 전화를 안 받는 건 아닌지.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 지금 와 생각하면 좀 오버였지 싶은데, 비슷한 상황이 또 온대도 엄마는 그날처럼 오버할 것 같아.

두 손을 맞잡고 하나님과 부처님을 부르고는 도와달라고 했어. (너도 알지? 엄마가 무교라는 거) 엄마의 암 DNA가 너에게 간 건 아닌지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진짜 그렇게 되었다면 방금 간절하게 불렀던 하나님과 부처님을 내가 가만 안 두겠다고도 말했어.  신이라는 존재가 이러면 안 된다. 이건 무심한 정도가 아니라 행과 불행의 번지수를 헷갈린 거다. 자격도 없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문득 고개를 흔들고는 가만있어 봐 내가 이럴 일이 아니라 누구보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 그러고는 티슈를 뽑아 힘껏 코를 풀었어. (참 가관이지)



업무가 갑자기 몰아닥치는 바람에 카카오톡도 보지 못하고 전화도 받을 수 없었다며 결과는 문제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도 풀렸어. '결과 이상 없음'이라는 문장 하나면 될 걸 얘는 어쩌면 이렇게 무심한 걸까. 슬픔과 당혹스러움이 지나간 자리에 쓸쓸한 마음과 원망이 슬며시 들어오더라. 지야, 엄마는 그날 이후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어. 그러느라 브런치 연재도 일주일이나 늦었단다.  앞을 보고 달려가기 바쁜 자식의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거, 어떤 경우에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한다거나, 이런 쓸쓸함을 당연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주로 그런 생각들.

이젠 애착과 집착을 갖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때. 꽉 쥔 손을 풀어야 할 때라는 것, 놓음이 진정한 소유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허전함과 쓸쓸함을 얼마나 더 겪어야 완전한 해방을 맞을 수 있을까. 그런 평온이 오기는 오는 것인지. 뭐 그런 생각들.



내 딸은 미래를 향해 씩씩하게 걷는 진정한 실존주의자. 하루하루를 생의 첫날이나 마지막 날처럼 치열하게 사는 이십 대. 오늘은 내일을 담보로 사는 것일 뿐, 지식과 지혜를 구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느라 바쁜 나이. 하룻밤에도 일생의 계획을 세웠다가 다음  밤이면 지워버리는 열정 그러면서도 전부 실행하지 못했다며 의기소침해지는 창조적인 삶을 사는 딸아. 전장에서 돌아온 전사처럼 무기를 내려놓고 갑옷을 벗고 지친 육신을 누이고 편안한 잠을 원할 때, 엄마 밥으로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싶을 때는 언제든 찾아오렴.

이전 07화 딸에게 보낸 카톡 그리고 미발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