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딸! 토요일 대학 동창 모임은 재미있었어?
지- 아니, 무척 힘든 시간이었어. 누가 일부러 편을 갈라놓은 것처럼 양쪽으로 편이 갈라져서 분위기가 좀 안 좋았어.
설- 양쪽으로? 어떻게?
지- 한쪽은 남친 직업, 남친이 타고 다니는 차를 자랑하는 그룹, 나머지는 그런 애들에게 실망한 그룹.
남친이 없는 친구들은 자기 재력도 아니고 남친의 재력을 자랑하는 애들에게 진절머리가 난다면서 하나둘씩 자리를 떴어. 나도 세 시간 만에 집에 왔어. 하루가 지난 오늘은 그 단톡방에서 빠져나와야겠다고 결심했지. 그냥 생각이 많아졌어 엄마. 왜들 그러는 거지? 친구에 대한 배려가 왜 그렇게 없는 거지?
나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돼. 사람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거른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막상 내가 그런 상황에 되니까 여러 가지로 마음이 안 좋네. 이건 정말 필연적인 일인가?
설-글쎄.... 거른다는 표현이 좀 그렇네. 아무튼 학창 시절에 맺은 인연이 죽을 때까지 가는 건 아니니까.
아니 오히려 인연이 닿았다 끊어지는 일이 자연스러운 거지. 각자의 상황이 달라지고 주어진 여건도 바뀌면서 서로 다른 인생을 살다 보면 갈 길이 완전히 다를 수 있잖아. 잘 생각해서 신중하게 결정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리고 미발송
지야. 네가 어릴 때 이모라고 불렀던 엄마 친구 기억나지?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누군지 너는 금방 알 거라고 생각해. 그 친구와 엄마는 14살때부터 47살까지 함께였어. 참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사람이었어. 그런 사람과의 절연에는 비밀스럽고 아찔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 그리고 그 갈등은 하루 이틀 사이에 생기지 않았기에 벽지에 붙은 곰팡이처럼 닦아도 닦아도 완벽히 사라지지 않더라.
그 친구는 여러모로 엄마를 성장시켜 주었어. 상상이나 공상에 빠지길 좋아하는 나에게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친구였고 이성적이고 계산도 빨랐어. 나이가 어린데도 손익 계산을 따져야 할 때면 감탄이 나올 정도로 똑 부러지는 애였는데, 그 애에 비하면 나는 얼치기 팔푼이 같았다니까. 반면에 닮은 점도 있었어. 들 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직설적인 편이어서 티격태격 싸울 일이 많았어. 나는 성미가 약간 급했고 걔는 느긋해서인지 다행히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어. 엄마는 상처를 잘 받는 예민한 성격이라 그 애의 말에 자주 상처를 받았지. 그 친구는 속을 알 수 없는 능구렁이 같은 면이 있었고 작은 일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약간은 무심한 성격이었기에 상처받는 나를 이해하기 힘들어했어. 그렇게 친구와 함께 한 33년 동안 나에게는 수백 개의 절연의 이유가 생겼어.(물론 내 입장에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지금도 얼굴을 보지 않고 사는 걸 보면 그 친구 또한 헤어질 이유가 많지 않았을까 짐작하고 있지. 요즘 같으면 둘이 mbti 검사를 하고는 네가 왜 그런 인간인지 이제야 알았다며 앞으로는 서로를 더 이해하자고 마주 보며 웃었을까?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어. 나무 벤치에 앉아서 흘러가는 구름을 하염없이 봤고 야자가 끝난 어느 날 밤에는 그 애의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을 나직이 불렀던 날도 기억나네. 독서실에서 밤을 새우던 날에는 함께 북두칠성을 찾은 날도 있었어. 참, 같은 대학에 붙지 못했다고 슬퍼하며 싸구려 와인을 마시기도 했고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요플레 한 개를 나눠 먹던 날도 기억난다. 그러면서 우리는 각자가 꿈꾸는 미래를 말했어. 엄마는 그때까지도 꿈을 정하지 못했지만. 그 애의 꿈은 돈이 많은 사람이 되는 거였지. 긴 시간 꾸었던 꿈이었으니 그 애의 꿈은 이뤄줘야 마땅했어. 다행히 돈이 많아졌고 나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된 거지. 그러면서 우리의 관계도 변화가 생겼어. 돈은 많은 걸 변화시키니까.
지야.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행복한 삶에 대한 조언을 구할 때가 있는데 주변에 좋은 친구를 두라는 말을 꼭 덧붙이게 돼. 내 쪽에서 손절을 했던,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던, 아무튼 친구는 그 시절 나를 지탱해 주고 기쁨을 주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줬거든.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기면서 집에서 만들어진 불안과 외로움이 조금은 흐려졌고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농담을 하면서 사춘기의 긴장을 풀었지. 누가 뭐래도 우린 단짝이었고 서로의 존재가 눈부셔서 어딜 가나 자랑을 했었어. 나는 이런 친구가 있는 사람이다. 하고.
그런 친구와 절연한 지금, 아쉽지는 않냐고? 글쎄, 대답 대신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네. 그 친구와의 인연이 끝날 때쯤 엄마 인생에도 어떤 변화가 시작됐던 것 같아. 어릴 때 꾸지 못한 꿈을 꾸기 시작했달까. 바로 '나'로 사는 삶. 나로 살겠다는 그 꿈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 고독을 선택하게 만든 것 같아. 나이가 40이 넘었으니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독립하고 싶었어.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내 힘으로만 우뚝 서는 일. 익숙한 것들이 갑자기 불편해지면서 친구와의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용기가 난데없이 생긴 걸 보면 홀로 서는 일이 필연적이었는지 모르지. 혼자 가만히 생각했지 그동안 불편하지 않은 것들이 왜 갑작스럽게 불편해졌을까. 그전에는 참을만했던 친구의 말과 행동이 참기 힘들어진 건 친구에 대한 불신과 관계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그즈음이었을 거야. 문득 친구가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어. 그건 우리 둘의 끈끈했던 관계에서 내가 완전히 분리되는 기분이었어. 잡았던 손을 놓고 혼자만 먼 우주로 이탈하는 느낌이었달까.
어느 날부터 그 친구의 삶은 매일 성대한 잔치를 벌이듯 떠들썩하고 즐거움의 연속이었는데 나는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고유한 내면을 만들고 싶었던 게 고립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을거야. 친구의 손을 놓으면서 비로서 내 인생을 제삼자가 보듯이 내려다볼 수 있었어. 그동안 참 엉망이었더라고. 엄마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책에 빠지기 시작한 때가 바로 그 무렵이야. 이제는 알지. 기존의 것들과 단절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 물론 긍정적인 변화지. 그러니 딸아. 인연의 시작과 끝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 없단다.
오늘도 참 긴 이야기가 됐다.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