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맨사 하비의 『궤도』
서맨사 하비(Samantha Harvey)의 소설 《궤도》(Orbital)는 2024년 부커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책을 좀 읽는 편이지만 이런 종류에는 손이 잘 안 간다. SF는 재미없다는(내 기쥰) 선입견은 굳어질 대로 굳어져서 이제는 아예 그쪽 언저리는 얼씬도 안 한다. 이 책은 어쩌다 보니 딸과 함께 읽게 되어서 억지로 시작했다.
다른 독서가들이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언급할 것이므로 나는 작가의 문장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왜냐하면 이 작가의 문체가 꽤 독특했기 때문이다. SF와는 어딘가 좀 어울리지 않는 서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그 서정적 느낌이 과학적 정밀함과 조화를 이루는 점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문장에 리듬감이 있다. 소설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16번 공전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며,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일출과 일몰, 우주비행사들의 내적 성찰, 그리고 지구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 시와 비스무리한 운율을 보여준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의 의도임이 분명한데 독자로 하여금 마치 우주정거장의 궤도를 부드럽고 지속적인 리듬으로 돌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소설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 특이한 리듬이 책에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보였다.
하비는 NASA와 ESA의 기술 자료, 실제 우주비행사의 경험을 오랫동안 조사 또는 연구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탄탄한 이론을 만들었기에 과학적 디테일과 시적 표현을 조화롭게 섞어 한 편의 소설을 만들어 낸 것 같다. 그녀의 문장은 우주정거장의 무중력 상태, 지구의 빙하와 사막, 태풍의 소용돌이 같은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인간의 연약함과 우주의 고요함을 감성적으로 전달했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을 넘어, 독자로 하여금 지구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새롭게 성찰하게 만드는 철학적 깊이까지 가게 만든다
또한 시각적 이미지도 강렬해서 독자에게 생동감 있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독자는 마치 우주비행사와 함께 창밖의 장관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장황함보다는 선명하고 간결한 이미지를 주는 문장이고 그러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궤도》는 “개개인의 내면과 상황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산문시에 가까운 소설이라는 평을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이보다 분명한 설명은 없는 것 같다.
딸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책이었지만 좋은 경험을 한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이런 종류의 책을 다시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소설을 읽고 부커 상의 수상 기준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라의 소설 저주 토끼도 2022년 부커 상의 최종 후보작이었고 그 책 또한 꽤 신선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렇듯 수상작들이 좀 여러모로 신기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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