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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단편으로 마음을 뒤흔들다

클레어 키건, 너무 늦은 시간

by 김설



침대맡 조명을 켰고 과감하게 잠을 미뤘고 키건의 소설을 펼쳤습니다. 이 단편집이 내게는 무겁거나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없었습니다.

나는 소설로 함부로 감동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소설에 대한 평은 냉정하고, 소설의 입장에서는 내가 꼰대로 보일 수 있습니다. 약간은 청개구리 기질도 있습니다. 남들이 열광하고 읽는다 하면 당장은 읽지 않겠다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나 예외의 작가가 있습니다. 그런 작가들이 주로 내 독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작가는 역시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군요. 키건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여줄 뿐입니다. 카헐이라는 남자를 해부합니다. 그의 여성 혐오와 자기 연민이 어떻게 뒤엉켜 있는지를. 연인이 떠난 뒤의 그 공허함이 사실은 오래전부터 그 안에 있었다는 것을 독자에게 조용히 알려 줍니다. 식탁에서 어머니가 넘어지는 장면, 그것을 보며 웃는 남자들의 모습이 섬뜩합니다. 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인 모습으로 스며들어 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만난 여성 작가는 나와 비슷한 사람일 수도 있었습니다. 조용한 공간에서 글을 쓰려 하는,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남자에게 자신의 영역을 침해당합니다. "케이크나 만들고 있군요"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화가 나서 책을 잠시 덮어두어야 했습니다. 키건은 이번에도 그냥 보여줄 뿐이균요. 나보고 알아서 분노하라고.

마지막 이야기는 복잡했습니다. 행복하다고 믿었던 여자가 낯선 남자와 보내는 하룻밤. 키건은 이것을 단순한 불륜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여자가 왜 일탈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차가운 긴장감만 독자에게 전해줄 뿐입니다. 그 여자의 내면에 있던 어떤 공허함,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대해 짐작하게 만들 뿐입니다. 나는 까닭을 알 수 없어지고 해답마저 잃어버렸습니다. 뭐지? 끝은 또 왜 이래?


키건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런 일입니다. 명쾌한 결론 대신 서늘한 깨달음만 남는 것. 사실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니, 그것이 진실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간단해 보이는 이야기에도 많은 비밀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건 클레어 키건의 특기입니다. 독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은 정말이지 최고입니다. 키건의 책이 세상에 또 나오면 또 읽게 될까요. 그건 그때가 돼서야 알 수 있겠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도 카페에서 들리는 대화도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사건들도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고 더 복잡하고 깊은 맥락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소설이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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