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정은정
정은정 작가의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단순히 먹는 이야기, 농업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밥’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사회적이고, 관계적이며, 동시에 감각적인 언어라는 사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농촌, 먹거리,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사회비평으로 소개하지만 나는 책 속에서 ‘밥’이라는 단어의 정서에 더 집중하게 됐다. 눈 뜨면 식탁 앞에 앉는 게 일상이어서 밥이 주는 감사를 잊고 살았다. 밥은 라면일 수도 있고 포케 한 그릇일 수도 있고 닭 가슴살 한 덩이일 수도 있다. 여하튼 밥 한 그릇은 누군가의 땀, 누군가의 아침과 저녁, 누군가의 건강과 노동과 아픔이 섞인 결과물이다.
책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가, 식탁 풍경이다. 말이 좋아 식탁이지 먹을 걸 부려놓을 공간조차 없는 밥상도 많다. 밥상은 계절과 날씨, 노동의 리듬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계절을 잃어버렸다. 딸기는 제철이 겨울이 되었고 한겨울에도 수박을 구할 수 있다. 입덧을 하는 아내를 위해 제철이 아닌 과일을 찾아다녔다는 남편의 일화는 이제 전설로나 들을 수 있을 만큼 농촌도 먹거리도 시장도 변했다. 이 책은 그 잊어버린 감각을 다시 불러낸다. 농촌과 도시, 먹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동시에 일어나 나에게 걸어온다.
작가는 그들과 나 사이에 놓인 ‘거리’를 끊임없이 묻는다. 지면을 빌려 고백하지만 나는 먹거리에도 농촌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먹는 게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고 배가 고프면 배를 채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요즘 들어 건강이니 뭐니 신경 쓰느라 유기농 식재료도 찾아보고 "아. 유기농은 뭐 이렇게 비싸" 하면서 주머니 사정이나 살피는 사람이었다. 그랬으니 밥과 먹거리에 관해 오래 생각했을 리가 없다. 밥 한 공기를 먹는 일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날씨와 계절과 상황과 시스템이 걸려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그랬던 나에게 작가의 문장은 가볍게 던지는 돌멩이 같았다. 툭툭. 농담을 섞어가며 툭툭. 농담인 듯 농담이 아니고 겉보기엔 무디지만 날카로운 말을 건넨다 책의 내용은 불편할 만큼 솔직하고, 그래서 더 따뜻하다.
정은정 작가는 날카로운 사회비평 속에서도 늘 ‘살아 있는 사람’ 이야기를 꺼낸다. 밥상 위에 놓인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라고 일깨워 준다. 나도 너무나 쉽게 때로는 버릇처럼 무심코 하는 말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사실은 “오늘도 너와 살아내고 싶다"라는 말이라는 것도 알려줬다. 내가 한 말이 그런 뜻이었구나. 나는 인사치레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책의 제목처럼 “밥은 먹고 다니냐?” 이 말은 누군가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마음이며, 마음의 체온을 상대에게 확인시켜주는 질문이었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일인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갑자기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어진다.
“밥은 먹고 다니냐” 이 말을 전하고 싶은 얼굴들이 줄지어 떠올랐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니? 거기 있는 너는 괜찮니?"
나에게도 조용히 물었다. “그러는 너는, 괜찮니?”
가볍게 썼다고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다. 무겁게 읽자면 한없이 무거울 수 있는 내용도 많고 군데군데 눈물이 핑 도는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슬프게 읽었다는 느낌은 없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지만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들을 알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했다. 뭔가 상활이 달라진 건 없는데 정은정 작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희망이라는 것을 조금은 가져봐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따뜻한 성품으로 쓴 책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보일 듯 말 듯 한 작가의 유머도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