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설 Dec 02. 2021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은 이불.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의 침대



수희님 안녕하세요.


마침내 왔어요.(대뜸) 손가락 끝이 떨어져 나갈 것 같고 두피까지 얼어버릴 것 같은 계절이 왔어요. 오늘 아침 기온을 확인해 보니 영하 6도라고 하네요. 평생 내복이라는 건 쳐다보지 않고 살던 시절도 있긴 있었는데 이제는 롱 패딩을 이불 삼아 온몸을 휘감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즘엔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나가야지 안 그러면 머릿속으로 바람이 들어와서 잠깐 사이에 감기가 들어버리는데요. 한 번도 안 그런 날이 없어서 생각보다 내 몸은 정직하구나 하는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됩니다. 몸이란 어찌나 명료한 지, 이렇게 단순한 몸뚱이를 어쩌면 이렇게 관리를 못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알다가도 모를 게 몸뿐이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분명한 건 하나도 없었고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도 알고 보면 우연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모르는 것 천지였죠. 사람은 죽을 때까지 궁금한 것을 알려고 애쓰다가 죽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어떤 작가님이 트로트 가수 장민호의 열성적인 팬이에요. 팬카페에 가입도 하고 평소 그분의 성격대로 열정적으로 팬심을 표현하시더라고요. 당신이 장민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때 그분의 눈에서 깜빡이는 수많은 핫 핑크색 하트를 봤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게 이해가 잘 안 되더라고요.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좋아할 수 있나. 그것도 무대 위의 사람일 뿐인, 쉽게 말을 걸 수도 없는 연예인을? 왜냐하면 저는 사춘기 시절에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대상을 좋아한 일이 없었거든요. 내가 중학생이던 당시에 제 또래들은  송골매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조용필,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박남정이나 신해철, 변진섭, 이문세, 조금 더 나가면 김현식이었어요. 참, 농구대잔치에 미쳐있는 애들도 있었는데 당시 코트에서 종횡무진 뛰는 오빠들에게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던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때 뛰던 선수들 중 가장 유명한 분이 바로 허재 씨였습니다. 얼마 전 허재 씨가 무릎이 아파서 뛰지 못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고 그분의 팬도 아니었지만 조금 슬펐어요. 에휴.. 나이 듦이란,


아무튼 저는 유명 가수의 팬으로도 농구대잔치의 팬으로도 살지 못했어요. 어떤 무리에도 끼어들지 않고 어딘지 모르는 그저 먼 곳만 바라보는 애가 바로 나였어요. 뭐 대단한 걸 궁리하는 얼굴이었지만 사실 아무 생각이 없던 아이였어요. 제가(말을 꺼내면 또 옛날 사람 인증이라서 안 하려고 했는데 결국)


먼 곳을 바라보는 아이였다고 하니까 뭔가 철학적인 냄새가 나지 않나요? 하지만 똑똑한 아이는 절대 아니었고 조금 엉뚱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좀 칠칠치 못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할 때도, 주어진 과제를 수행할 때도 꼼꼼한 듯하면서도 결과물은 언제나 엉성한 편이었고 시작은 의욕적이지만 끝은 항상 숲 속으로 스르륵 사라지는 어린 뱀 같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나를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서 끝에 가서는 "쟤 별거 아니네?" 하고 실망을 안겨줄까 봐 늘 전전긍긍하는 아이였어요. 써놓고 보니 지금도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서 당황스럽네요. 저는 엉뚱한 공상의 천재였어요. 말도 안 되는 공상을 하는 시간은 주로 수학 시간이었는데요. 숫자만 보면 어지럼증이 일어서 그걸 참으려고 엉뚱한 생각을 시작했었죠. 예를 들면 엄마가 죽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같은, 너무나 두려워서 미리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상상했어요. 현실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을 미리 예행연습했다고 할까요. 엄마의 부재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주르륵 생각나고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점점 숨이 가빠오는 거죠. 바로 그 순간에 날아온 분필을 이마에 정통으로 맞은 적도 있어요.


결국 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것도 모자라 온갖 책을 읽으면서 상상에 상상을 더하는 사람이 되었나 봅니다. 수희 님을 만나러 가는 날 지하철에서 읽었던 책 [침대]가 바로 그런 책이었어요. 700kg을 육박하는 몸무게의 남자가 누워있는 거대한 침대, 그 위에서 움직일 때마다 접힌 채 출렁이는 지방 덩어리들, 그를 집 밖으로 끌어내려고 집의 정면을 허무는 모습, 불룩해진 배 쪽으로 처진 가슴 아래에 끼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텔레비전 리모컨, 아무튼 재밌고 이상한 상황을 상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의 [침대]는 현실에서 도저히 엄두가 안나는 일이 소설 속에서는 실현이 된다!라는 문장에 완벽히 부합하는 책이었어요.



주인공 맬컴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일을 멈추고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기 시작해요. 엄마가 주는 음식도 침대에 누워서 먹고 사귀던 여자와의 관계까지 끊어버리고 침대 위 은둔자가 됩니다. 이건 그가 작정한 일이에요. 하지만 누구도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요? 한때는 눈에 띄는 근사한 외모와 행동으로 여자애들에게 인기쟁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침대에 누웠고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먹고 살을 찌우는 일 밖에 안 하는 사람을 무슨 수로 이해하겠어요. 맬컴은 사실 어릴 때부터 조금 기이한 행동을 하는 아이이긴 했어요. 지붕 위에 있는 텔레비전 안테나에 알몸으로 매달려 있거나 엄마와 동생과 함께 극장에 가서는 슬그머니 옷을 벗어서 완전히 나체가 되어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극장에서 엄마를 얼음으로 만들고 극장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아이였어요. 그런 맬컴이 변한 건 자신의 인생에 무언가 엄청난 것이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따분하고 미래는 뻔히 예상되는 일뿐이라고 깨닫고부터에요. 그러고는 25살 생일을 기점으로 침대 위로 올라가버린 거예요. 그게무엇이든 일찍 깨달았죠? (저는 25살에 뭘 했을까요. 아마 강남역 일대를 배회했지 싶네요.)아무튼 침대에서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20년만큼의 살이 찌게 된 거죠.



맬컴의 이 행동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위대한 사람이라서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 쉬운 행동을 하는 걸까요? 말하자면 너무 똑똑해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모르는 걸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고 가장 지적인 일이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들었는데요.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가장 어렵고 지적인 일을 해내고 있는 건 분명하네요. 그는 무엇이 고통스러워서 스물다섯 살에 자기 인생의 관객이 되기로 작정한 것일까요? 수업 시간에 날아온 분필에나 맞았던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맬컴의 기이한 행동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해두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너무나 재밌는 책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해해 주실 거라 믿어요.



수희 , 저는  웃기고 재밌는 책에 약간의 눈물 자국을 남겼습니다. 바로 맬컴의 엄마 때문인데요. 점점 거대해지는, 자기 의지로 움직일  없는 아들의 발톱을 깎아줘야 하고  몸을 씻겨야 하고 그가 먹어대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심지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할  없을 만큼 비대해진 아들 때문에 집에서 나와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엄마를 상상하다가 울었어요. 자식에 대한 사랑을 조절할  없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 건지 나는 조금은 아는 사람이라서요, 따지고 보면 맬컴의 몸이 망가진 것은 엄마의 사랑이 지나치게 듬뿍 담긴 음식 탓이기도 하니까요. 아들에게  이런 이상한 짓을 하는지   번도 묻지 않고 기꺼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엄마, 자식에게만큼은 냉정 함이라는  모르는 엄마, 그저 아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일들만 묵묵히 하는 엄마가 눈물겨웠어요. 어떤 사람들은 욕을  수도 있겠죠. 아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은 엄마라고요. 하지만 제삼자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해요, 왜냐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마음을 쓰고 있는  분명하니까요. 어쨌거나  인간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책임지는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요.



엄마의 사랑은 너무 두툼해서 숨이 막히지만 확실히 따뜻하기는 한 이불 같다. 엄마는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모두 바쳤다. 만일 전생이 존재한다면, 엄마는 촛불 하나를 손에 들고 푸른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포화에 휩싸인 전쟁터를 누비는 간호사 였을 것이다, 죽음을 앞둔 병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간호사, 그런 엄마가 현생에서 우리, 아니 정확히 말해 내게는 기억조차 희미한 외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맬컴 형 곁으로 온 것이다. 엄마는 그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아부었다. 자신을 위해 남긴 건 하나도 없었다. p 19





수희님, 세상은 요즘 미숙한 존재를 무심하게 홀대하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사실 훌륭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건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저처럼 칠칠치 못한 사람, 어딘가 모자란 사람, 저 인간을 어쩌면 좋나... 싶은 그런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는 일이야 말로 어려운 일이지만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흔히 쓰는데요. 나는 그 진심이란 단어가 어쩐지 석연찮아요. 진심이라는 명사가 사랑한다 라는 문장 앞에 붙으면 사랑이 지나치게 단순해지고 원시적으로 느껴진달까요? 진정한 사랑이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닌 거 같아요.

내 경험으로 사랑은 거지 같고  심사가 꼬이고 진창에 빠진 것 같은 순간이 훨씬 많았어요. 당장 벗어버리고 싶은 누더기를 입은 것 같은 순간에도, 진흙탕에 굴러 흙투성이가 된 얼굴로도 여전히 끝에서는 희망을 말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런 사랑은 점점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네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한평생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떻게 살던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하지만 상대의 생애와 내 생애를 하나로 묶어버린 이상 그에 따르는 책임과 그 상대를 대하는 나의 일관성에 관해서는 늘 생각을 하게 되는 문제네요.


수희님 날이 추워요.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고 일하시는 곳에 따스한 햇살이 오래 머물기를 바라요.



2021. 12. 2


김설









매거진의 이전글 가난한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