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헛소리가 나의 헛소리를 일깨운다면

♬Portishead | Roads

by 로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인생에서 당신들이 절반만큼도 엄두 내지 못할 것을 극단까지 끌고 갔을 뿐이고, 당신들은 소심함을 신중함이라 여기며 자신을 기만함으로써 위안으로 삼은 사람들 아닙니까.

-도스토옙스키, '지하에서 쓴 회상록'



인간이 자기에게 해로운 것, 분별없는 것, 심지어 가장 어리석은 것을 일부러, 의식적으로 바라는 경우가 있단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에게 가장 어리석은 것조차도 소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기 위해서요.

-48p


우리가 얼마나 삶에서 멀어졌는지 실제 '살아있는 삶'에 대해서 때때로 어떤 혐오를 느낄 정도이고, 우리에게 그 삶을 언급하기만 해도 우리는 참을 수 없어 합니다. 실제 '살아있는 삶'을 노동으로 여기거나 어디에 복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나머지, 책에 쓰여 있는 대로 삶을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고 우리 모두는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199p



오랫동안 지하에서 은둔하여 살다 보면, 다 이렇게 미치게 되는 걸까?

아니다, 그저 자의식 과잉의 표본이라 할 만한 인물이 거주지를 지하로 삼은 것뿐.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둔감해진답시고 숨어들어봤자, 공상은 늘어나고, 광기는 점점 거세질 것이다.


지하 생활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상을 피해 숨어들어 왔다 해도

오히려 피한 상태에서 해소되지 못한 울분을, 누구의 터치도 받을 일 없어 더 거세게 퍼져나가는 잡생각들을

독백으로 쏟아내는 걸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그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지나치게 진지하고 과장된 모습이 주는 유머러스함이 있고

또 우리가 옳다고 믿는 세상의 룰이 다소 허위와 허영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니,

헛소리를 뭐 하러 듣나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빨려 들어가게 된다.


정상인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도 헛소리는 계속되지 않던가?

오히려 더 세련되게, 현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올라서려 할수록 헛소리가 많아지지 않던가?


지하 생활자만의 허위와 허영이 있고

지상 생활자의 허위와 허영 또한 있으니.

누가 누구에게 선을 긋고 떳떳하게 잘못됐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하 생활자는 책 한 권을 써낼 정도로 엄청난 자아의 에너지를 분출했지만

그의 기록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후를 계속 썼다는데..

너무 궁금해 미칠 것 같다.

(근데 '미칠 것 같다'는 표현도, 미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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