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속에서 언어는 쓰여지다가, 말다가, 쓰인다.

♬Low Roar | Nobody Else

by 로제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을 고정할 방도가 없다. 차라리 구술할 수 있다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수 있다면. 삼켜질 수 있다면. 내뱉을 수 있다면.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는 동안 이야기가 거느린 과잉된 수사들이 사라진다면.

-한유주, '얼음의 책'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므로, 내가 아직 하지 않은 말들까지 의심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렇게 의심하는 시간들이 미래는 아닐까, 나는 생각하기도 합니다.

-94p


세상에는 모든 사물들과 모든 감정들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감정의 모서리를 위태하게 밟고 다녔다.

-190p


진실을 진술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을 서술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과 내일은 어떠한 접속사로도 연결되지 않는다. 시간에는 문법이 없다. 시간에는 문장이 없다. 시간에는 단어가 없다.

-252p



번쩍, 하고는 사라진다. 장면이 다른 장면을 덮친다. 걸음마다 발자국이 모래로 뒤덮인다.

보는 즉시 없어진다. 비트를 타는 것만 같다. 구불구불, 등성이를 넘듯이.

문장들이 읽히는 듯하면서 읽히지 않는다.

읽은 것인가, 읽지 않은 것인가? 나는 독자인가, 독자가 아닌가?

생각하다 생각하기를 그친다.


부정의 부정, 있던 것들을 없애 버린다.

없던 것들을 있게 만든다.

무엇으로 수렴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빈 터에서, 언제나 빈 터에서 모든 건 시작되고, 없어진다.


광활한, 언어가 필요 없는 그곳만은 부재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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