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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May 02. 2024

여행 가방을 버려둔 채 달려 나가도 괜찮다.

실비아 플라스, '메리 벤투라와 아홉 번째 왕국'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어딘가에 와 있다는 것은, 그저 가볍게 넘길 일만은 아니다.


다음 스텝을 위한 기로에 놓여 있던 그 시점, '나는 진실로 내 의지에 따라 판단을 내렸던가'를 숙고해 보았을 때 소름이 돋는 것은 왜일까?


사방이 가로막혀 빠져나갈 방도가 보이지 않았더라도 체념이 아닌 방법을 강구하고,

내 용기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여 저항해 보았던가?

혹은, 나를 지지해 주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음에도 두려움이 앞선 나머지 현재의 상황에 순응해 버리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조금만 둘러보면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오직 자신을 위해 '다른' 선택을 한 이들을.


이 소설의 주인공 메리 벤투라와 같이.


다만, 그녀도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았다.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그녀는,

왜 가야만 하는지, 어떤 곳인지, 무엇이 본인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부모가 끊어준 티켓을 받아 들고 열차에 탑승한다.


목적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결코 도중에 나갈 수 없는 열차를.


게다가 메리는 우연히 동승한 여자를 통해 그 목적지가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곳임을 알게 된다.


메리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순리(?)에 맡길 것인가, 미친 적, 아니 정말 미쳐버릴 정도로 묘책을 찾아볼 것인가.


끊임없이 자신의 의식을 깨어 왔던 메리 벤투라는 포기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또는 주어진 한 번의 기회)을 생각해 낸다. 

바로 비상 정차 줄을 당기는 것.


그 한 번의 결심이 서자, 목적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여자는 이후의 대처 방안에 대해 알려주고 곧 보게 될 거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긴다.


그다음부터는 순전히 메리의 몫이다.

돌이킬 수 없는 한 번의 결심, 한 번의 행동, 그리고 이어지는 위협과, 도전의 순간들.

남들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 따라 행동을 했을 때 거쳐야만 하는 일들을 메리는 고스란히 겪고, 여정의 마지막에서

마치 '죽음의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신선한 기분으로 새로운 세상을 맞는다.



여행 가방을 버려둔 채 달려 나가도 괜찮다. 열차 안에 머물기를 선택한 나머지 사람들과 다를지라도, 오직 나만을 위한 여행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자 내 의지로 행한 결정이라면. 


아직 앞일이 다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나를 믿고 있으니까.

또 그 종착지에는 나보다 앞서 같은 길을 걸었던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실비아 플라스, '메리 벤투라와 아홉 번째 왕국'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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