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J소읍에 7년째 머무르고 있다.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스스로 말하기를-서울을 탈출한 지 7년째가 되는 셈이다. 자주 길 위에 서고 싶었던 젊은 날 지금 머물고 있는 소읍으로 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이런 낯선 소읍에서 선생이나 하면서 심심하게 살면 좋겠어"라고 했던 바로 그곳에서 바람대로 살고 있다.
J 소읍은 10분당 주차비가 100원인 곳이다. 동네 구멍가게의 상호는 밀레니엄 슈퍼이다. 빛바랜 슈퍼 간판 귀퉁이엔 롯데 태양 로고가 빙글빙글 웃고 있다. 간혹 2차선 도로에서 경운기를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경운기의 속도에 맞추어 하냥 뒤따라 가는 수밖에 없다. 소읍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서울에서 그랬듯이-영화 예매를 서둘렀다. 예매사이트에 떠있는 198/200이란 숫자에 놀라 황급히 예매 버튼을 클릭했던 그날 소읍 영화관 관객은 3명이었다.
J 소읍에서 가장 낯선 것은 '어둠'이었다. 촉수 낮은 가로등 때문인지 상가들이 일찍 문을 닫아서인지 아니면 도로 위 차들의 듬성듬성한 불빛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불친절한 소읍의 어둠 때문에 나는 밤이 무서웠다. 오랫동안 도시의 밝은 밤에 익숙했던 나는 어둠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걷는 소읍 사람들의 무던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녁'의 암묵적 기준도 달랐다. 도시의 저녁때가 '배고픈 아무 때'라면 소읍의 저녁은 7시를 넘기지 않는 때다. 8시면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는 터라 7시 30분에 식당에 간다는 건 곧 장사를 마감할 식당 주인에게 미안해하며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소읍의 심심함은 오랫동안 익숙해지지 않았다. 더디고 헐거운 하루를 보내고 저녁마다 춘천이나 남해, 일산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너만 여기 있으면...'과 같은 가정형 문장을 말하던 그때 나는 사람의 말이 간절했다.
7년의 시간이 얼고 녹는 동안 축축했던 마음은 제법 잘 말라갔고 좋아하는 일상들도 하나 둘 차곡차곡 쌓여갔다. 한 끼에 반찬을 열 댓가지 넘게 주는 식당에서 가끔 주인 여자와 겸상하는 저녁을 좋아한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여자는 소주 반 병을 채운 맥주 그라스(?)를 내 앞에 두고 식당 일을 나 몰라라 하는 낚시광 남편을 흉본다. 독서모임 사람들과 금요일이면 책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좋아한다. 처음 J 소읍에 왔을 때 '이곳은 사막 같아'라는 혼잣말을 자주 웅얼거렸다. '바그다드 카페'를 첫 발제 영화로 고른 이유다. 모임을 끝내고 돌아온 날 '말의 위로가 아닌 곁을 내주는 야스민의 실존적 위로'라고 꾹꾹 눌러 적은 밤은 누군가에게 극진한 사람이고 싶었다. 요즘은 '당신에게 길'을 걷는 붉은 저녁을 가장 좋아한다. 길 끝에는 무너지고 세워지는 오랜동안 맨 몸인 채로 묵묵한 7층 석탑이 있다. '당신에게 길' 이름은 그렇게 지어졌다. 어제도 몸을 조이지 않는 헐렁한 옷을 입고 '바람의 노래'를 리플레이하며 걸었다. '당신에게 길'을 걸으면 학교 속에 아등바등 구겨넣은 분주하고 숨막혔던 오늘이 흩어진다. 길 중간의 느티나무는 '괜찮다 괜찮다'하며 수만 가지의 손으로 내 머리를 쓸어준다.
처음과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낯설고 불편했던 어둠이 더없이 친숙해졌다는 것이다. '이곳'이 사막이 아니라 '내 마음'이 사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닿은 것이다.'당신에게 길'위에서 나를 쓰다듬는 바람과 햇살 한 줌으로 문장을 차곡차곡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말을 그리워하는 대신 내가 사람의 말을 짓게 됐다.
나.는. 쓴.다. 낯선 소읍에서의 7년을 '낯설었다'는 과거형 문장이 아닌 '더할 나위 없다' 는 현재형 문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