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완벽한 하루의 완성, 회오리 오므라이스 한 그릇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위로가 되는 순간도 없습니다.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온전한 끼니조차 챙길 수 없는 당신에게. 매주 금요일 소소한 한 끼를 들려드릴게요.
인생, 음식. 소소한 이야기 한 그릇.
평소와 똑같은 출근길인데,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 골목 어귀에서 종종 마주치는 고양이도 오늘따라 도망가지 않고 인사를 받아주는 것 같고, 바람과 온도도 딱 적당한 것 같았다. 사거리를 건너 버스를 타야 하는데 횡단보도에 도착하자마자 초록불로 바뀌고 버스도 바로 도착했다. 그리고 항상 붐비던 버스인데 오늘따라 자리가 있어 편히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출발한 버스가 신호 한 번 걸리지 않고 달리고 있다는 걸 알아챈 순간, “오늘 운이 좀 좋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그 좋은 운은 계속 이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한참이 걸리던 업체의 피드백도 바로바로 오고 업무들이 차근차근 막힘 없이 진행되는 기분 좋은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맞이한 점심시간. 딱히 먹고 싶은 게 생각나진 않지만 오늘은 왠지 색다른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식당이 눈에 들어와 무작정 들어갔다. 원래는 다른 가게가 있었는데, 새로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주문을 마치고 나온 밑반찬부터 맛을 봤는데 웬걸. 새로운 맛집을 찾았다. 수많은 맛집 정보들을 뒤져가며 찾아낸 것보다 이렇게 우연히 들른 식당이 나만의 맛집이 되는 순간이 훨씬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오늘은 정말 뭘 해도 되는 날인가 보다.
신경 쓰지 않았던 점심 식사도 성공하고, 오후 시간도 순조롭게 흘러갔다. 사실 오전 시간이 너무 평화로워서 남은 오후 시간이 좀 불안했는데 아주아주 잘 넘어갔다. 퇴근 시간 무렵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엊그제 두고 간 우산 덕분에 이 위기도 잘 넘길 수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드는 날은 정말 드문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인가 보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문득 도전해 보고 싶은 음식이 생각났다. 바로 ‘회오리 오므라이스’. 말 그대로 지단의 모양이 회오리인데 그냥 밥을 덮는 것보다 훨씬 멋진 모양이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서진 님이 아이들에게 만들어주기도 했는데, 한 달가량을 연습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오늘같이 뭐든 다 되는 날이라면 이 회오리 오므라이스도 단번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재료: 당근, 양파, 소시지(햄, 베이컨 대체 가능), 대파, 달걀, 밥, 시판 토마토소스, 물, 진간장, 설탕, 랜치 소스
1. 당근, 양파, 햄, 대파, 소시지를 잘게 썰어 준비한다.
2. 달궈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채소와 소시지를 볶는다.
3. 양파가 투명해지면 밥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밥을 섞을 땐 짓누르지 않는 게 포인트)
4. 잘 볶아진 밥은 밥공기에 꾹꾹 눌러 담고 접시에 뒤집어 올려 모양을 잡는다.
5. 시판용 토마토소스 200ml, 물 200ml(1컵), 진간장 2큰술, 설탕 1큰술을 넣고 끓여 소스를 만든다.
6. 달걀 3개에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잘 풀어준다.
7. 섞은 달걀은 체에 걸러 알끈을 제거한다.
8. 중불로 예열한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섞은 달걀물을 붓는다.
9. 달걀의 가장자리가 조금 익어가면 나무젓가락을 서로 반대방향에서 중앙으로 끌어온다.
10. 젓가락 잡은 손을 바꾸고 한 방향으로 돌리고, 흘러나온 달걀물이 익으면 다시 손을 바꿔 돌리기를 반복한다.
11. 젓가락을 빼지 않은 상태에서 밥을 담은 접시 위에 살포시 올려주고 가장자리에 소스를 붓는다. 랜치 소스도 뿌려준다.
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명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영화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에서 유래한 ‘샐리의 법칙’이 있습니다. 회오리 오므라이스를 성공해 낸 저 날에 딱 맞는 단어였던 것 같아요. 매일매일이 이렇듯 기분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깝잖아요.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버텨내다 보면 가끔은 이렇게 좋은 날이 몰아치는 날도 있는 거 같아요. 아마 당분간 이렇게 좋은 일만 일어나는 날을 맞이하는 건 조금 힘들지도 모릅니다.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이 하루를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회오리 오므라이스는 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 부드러움 가득한 회오리 오므라이스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