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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읖 Apr 19. 2021

[차분(茶分)한시간, 보리차] 31. 매화차

봄을 부르는 매화차 한 잔

차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세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날씨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날의 그 순간 드는 기분도 그 선택을 좌우하겠죠. 꼭 꼬집어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로 문득 ‘이 차를 마셔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수많은 이유들을 제치고 ‘그냥 눈에 들어와서’라는 이유로 선택하게 되는 날도 있잖아요. 물론 이런 일은 비단 ‘차’에만 적용되는 일은 아닐 거예요.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계획을 세우고, 꼼꼼히 되짚어 보며 준비하지만 막상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잖아요.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면 작게는 며칠 전 우연히 매화차 한 잔을 하게 된 일. 크게는 취미를 즐기다 그것이 생업이 된 일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크고 작은 두 일 모두 제 생각 범위에 전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 당황스러움 덕분에 발견의 즐거움이랄까, 혹은 예상치 못한 일에서 오는 행복감이랄까. 기대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양한 감정과 큰 행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핑계 같긴 하지만 저는 웬만하면 계획적이지 않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요즘 출퇴근을 제외하곤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생활을 열심히 지속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여유 있던 주말 따끈한 차 한잔을 하기 위해 찻집을 찾았거든요. 분명 마음속에 마시고 싶은 차를 정해두고 찻집에 향했던 건데, 찻집에 도착해 메뉴판을 보자마자 그 생각은 망설임 없이 바뀌었습니다. 바로 ‘매화차’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매화차 앞쪽에 ‘봄 춘(春)’자가 적혀 있는데, 그 순간 ‘이 차는 봄이 지나가기 전에 꼭 마셔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해의 봄은 유독 더디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아마 다른 많은 분들께서도 마찬가지이실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텐데, 이번 봄의 시작은 왜 이리 춥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아쉬운 마음이 드는 요즘 매화차를 만나게 되니까 그 아쉬움이 조금은 달래 지더라고요. 아마 처음부터 매화차를 떠올리고 찻집에 갔다면 이렇게까지는 기쁘지 않았겠죠. 생각지도 못한 순간 만났기에 소소한 행복을 담은 차 한잔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계획적이지 못한 사람인데, 이런 순간들에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곤 해서 저는 아마 계속해서 계획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살아갈 것 같습니다.








매화차는 낯설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정말 말 그대로 매화나무의 꽃인 매화로 차를 마시는 건데요, 아무래도 봄을 대표하는 꽃이다 보니 봄기운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차 중 하나입니다. 매화꽃을 바로 따서 따뜻한 물에 띄워서 마시기도 하는데, 아직 저는 그런 신선한 매화차는 만나본 적은 없어요. 아무래도 개화시기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는 맛보기가 힘들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하지만 매화가 지기 전에 채집한 후 손질과 보관을 거치면 시간이 흘러서도 매화의 향긋함은 느낄 수 있습니다. 매화의 꽃받침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손질해서 하루 정도 그늘진 곳에서 말려야 한다고 해요. 그리고 아주 살짝 덖는 과정을 거쳐 보관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관한 매화는 뜨거운 물을 만나 매화차가 되는데, 이때 설탕이나 꿀 등을 첨가하면 향기와 더불어 달콤함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매화꽃을 따서 냉동을 시키거나 보관 시에 설탕에 재워두는 방법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 저는 이 두 가지 방법의 매화차는 마셔본 적은 없어서 언젠가 가능하다면 꼭 만나보고 싶습니다.

이런 매화차는 갈증을 해소하고 숙취를 없애며 기침과 구토 증세를 다스린다고 합니다. 특히 신경과민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되지 않을 때, 목안에 이물질이 걸려있는 것 같은 증상이 있을 때 효과가 있다고 해요. 또 머리가 맑아지고 피부가 매끄러워져서 기미나 주근깨를 방지하는 미용적인 측면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봄’하면 ‘벚꽃’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벚꽃보다는 매화를 더 좋아합니다. 매화와 벚꽃은 비슷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향의 유무나 꽃이 가지에서 피는지 아닌지 등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두 꽃 모두 예쁘고 봄의 설렘을 잘 표현하지만 ‘설중매’라고 해서 한겨울에 피는 매화가 개인적으로 더 매력 있게 느껴지더라고요. 한없이 가녀릴 것 같은 게 꽃인데, 그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모습이 제게는 인상 깊었거든요.

봄의 향긋함을 대표하는 꽃이지만 매화차는 향에 비해서는 씁쓸한 맛을 가졌습니다. 물론 먹을 수 없을 만큼 쓰다는 건 아니지만, 향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설탕이나 꿀을 함께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저는 인위적으로 단맛을 첨가하지 않은 매화차가 더 좋더라고요. 그 향과 맛이 매화 특유의 것이니까요. 올봄에도 화려한 매화축제도 보지 못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만난 매화차 한잔 덕분에 그 아쉬움을 조금은 달랠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서도 아쉬운 무언가를 대신해줄 또 다른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면서 물을 부으면 다시 피어나는 매화에 기분 좋아지는 하루였습니다.

안 그래도 짧은 봄이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것 같아 더없이 아쉬운 요즘, 이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더라도 사소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는 그 날이 어서 다가오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답답하기도 하고, 괜한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이번 한 주도 부디 건강하고 무사히 보낼 수 있길 바라고 바라겠습니다.





'차분(茶分) 한 시간, 보리차'는 보리차처럼 일상적이고 친근한 이야기를 나누며 차분한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차와 함께 하는 일상과 추억, 더불어 차의 효능과 역사 등 차와 관련된 모든 것이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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