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길에 카페에 들렸다. 한라봉에이드, 감귤쥬스 등 제주도에서 맛볼 수 있는 음료를 파는 곳이었는데 엄마, 아빠는 대추차를 시켰다. 생각해보니 엄마, 아빠는 따뜻한 음료를 좋아한다. 우리집에 올때도 커피는 안드시고, 차만 드신다. 엄마,아빠가 따뜻한 차를 좋아하니 다음번에는 차종류가 다양한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주여행 계획을 세울때 엄마, 아빠가 뭘 좋아할까를 중점을 둔다고 했는데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 위주가 된 것 같다. 어쩌면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도 좋아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엄마, 아빠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편안해하는지 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시절 '엄마,아빠는 왜 그렇게 내 마음을 몰라줄까.' 라는 원망을 한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내 자식도 좋아하겠지.' 혹은 '이정도면 충분하겠지.' 라고 생각하며 내게 해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대방은 이럴거야 라고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하다. 아닐 확률도 크기 때문에. 그래서 상대방이 뭘 좋아하는지, 원하는지 자주 물어봐야 한다. 대추차를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갈치조림과 갈치구이를 먹기로 했다.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붉게 물든 노을이 펼쳐졌다. 엄마는 걷다 말고 멈춰서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카메라에 담고 싶을만큼 멋진 노을이었다. 우리집 창문으로도 노을 지는 것이 보이는데 그 노을과는 다르다. 마치 화가가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초등학교때 준비물로 자주 등장한 파스텔로 문질문질한 느낌이랄까.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면 손에 묻어서 싫어했던 기억이 났다.
식당에 들어가니 사장님께서 옆에 박스에 있는 귤을 먹으라고 했다. 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맛있게 귤을 먹고, 통통한 갈치를 먹으니 꿀맛이었다. 어느덧 해가지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와 한라봉을 안주삼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엄마가 대학생때 제주도 왔던 이야기, 홀로 제주여행한 이야기를 들었다.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던 중 아빠의 한마디가 내 마음을 울렸다. "그동안 왜 그렇게 여유없이 살았을까. 제주도 한번 못와보고." 자식들 키우느라 제주도 갈 여유도 없었던 아버지. 그런것도 모르고 항상 부족하다고만 말했던 못난딸이었다. 앞으로는 많이많이 누리고 사셨으면 좋겠다. 여행 첫째날 내가 하루에 한곳을 돌아보더라도 잘 쉬다가 가면은 그게 좋은 여행인것 같다고 말했는데 엄마,아빠는 시간이 아까우니 다른곳도 갈 수 있으면 가보자고 했다. 아빠는 지금 제주에 있으면서도 "언제 또 제주도에 올 수 있을까." 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왜 이리 슬프게 들렸는지. 오고 싶으면 다음달에 와도 되고, 아니 다음주에 또 와도 되고, 올해 또 오면되고, 내년에 오면되고, 내후년에도 오면 되는데 아빠에게는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것이 굉장히 특별한 일인것 같다. 보이지 않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부모님을 보며 나는 참 많은 것을 누린 세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세대가 삼포세대라고 하지만 알고보면 부모님 세대도 참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였다.
내일 아침 성산일출봉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는데 한라산을 다녀와서인지 피곤하다. 다리가 아프다.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항상 그렇듯이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