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절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엄마가 나를 깨운다. 다리가 당긴다. 어제 한라산을 오르며 근육을 많이 쓴 탓이다.
"난 못갈거 같아. 엄마, 아빠 같이 다녀와."
"같이 가자. 딸이랑 같이 안가면 가는 의미가 없어."
"엄마.. 나 못갈거 같아. 다리가 너무 당겨. 그리고 피곤해."
"그럼 엄마도 안갈래."
현재시각 6시반, 7시10분이 일출시간이다. 성산일출봉을 오르는데 어림잡아 20분정도 소요된다고 하면 지금 가야 해뜨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안가면 엄마도 안간다는 말에 눈꼽도 떼지 않고 잠바만 대충 걸치고 나왔다. 입구에 도착하니 잠옷 입은 사람도 보였다. 다들 일출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다. 오를때마다 다리 근육이 당긴다.
"먼저가. 나는 천천히 올라갈게."
엄마, 아빠를 먼저 보내고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일출은 보고싶어 열심히 속도를 내본다. 딱봐도 어려보이는 20대 초반의 청춘들이 나를 앞질러간다. 해뜨기 전에는 올라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어기적어기적 열심히 걸어가본다. 정상에 오르니 사람이 꽤 있다. 바다 수평선 끝에서 붉은색 물감이 흩뿌려져있다.
현재시각 7시, 엄마는 생각보다 빨리 올라온 나를 보고 놀란다. 난 엄마, 아빠의 체력에 또 한번 놀란다. 저번주부터 헬스 시작했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해가 뜰락말락 하는듯 싶더니 7시 10분 바다 끝에서 주황빛의 동그라미가 1/5정도 보인다.
"우와! 와! 해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들린다. 일몰은 봤지만 일출은 처음 경험한 것이라 신기하기만 했다. 조금씩 해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해가 이렇게 뜨는구나. 맨날 집에서 창밖으로 해지는 것만 바라보다가 해뜨는 것을 보니 기뻤다.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때의 기쁨이었다. 아빠가 안보여서 한참을 찾았는데 저 멀리서 핸드폰으로 일출 장면을 찍고 있었다. 엄마는 내게 말했다.
"저 해처럼 OO이의 30대의 시작도 솟아오르기를 응원한다."
엄마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왜 어렸을때는 따뜻한 말을 많이 안해줬는지 원망스러웠다. 내 어린시절 엄마는 다정하고 상냥한 엄마는 아니었다. 대장부같은 스타일이었고, 작은것 하나도 간섭하는 친구들의 어머니와는 대조적으로 방임하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혼낼때는 엄청나게 무서웠다. 어렸을때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왜 우리 엄마는 나한테 무관심할까.'였다. 난 동생과 달리 어렸을때부터 엄마를 많이 찾았다고 한다. 한번은 할머니가 시골에 내려갈 일이 있어서 나를 데리고 갔는데 내가 지나가던 강아지에게 "너 우리 엄마 어디 있는지 봤니?"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엄마를 찾던 아이였다. 엄마가 많이 필요한 아이였던것 같다. 그치만 엄마의 관심은 동생이 태어난 후 나에게서 동생으로 넘어갔다. 그 이후 막내가 태어나면서 관심은 막내에게로 넘어갔다. 나는 항상 뒤에 있었다. 나도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지만 말을 잘 못했다. 나까지 징징대면 엄마가 힘들거 같아서, 서운하지만 동생이 어리니까 엄마의 사랑은 동생에게 갈 수밖에 없는거라고 그렇게 단념했던거 같다. 어느 순간 부모에게 요구하지 않고 혼자 알아서 하는 아이가 되었다. 한번은 엄마가 내게 말했다.
"어린애가 혼자 알아서 척척해내는게 대견했다." 라고.
"나는 혼자하기 힘들었지만 해야만해서 한거였어. 혼자 알아서 하는게 좋아서 한것은 아니었어. 나도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이 많이 필요했어."라고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몰랐다며 세심하게 보살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 눈물이 시작이었다. 어렸을때 내가 원하는 만큼 받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결핍에 우울해졌다. 그동안 '괜찮아, 혼자 잘 할 수 있어.'라고 나를 다독였던 순간들이 슬프게만 느껴졌다. 그 슬픔은 아직 내 마음속에 있지만 서른살의 내가, 그리고 지금의 엄마가 울면서 척척해내던 어린 나를 끌어 안아준다. 이제 서로를 알았으니 언젠간 그 시절의 내가 울지 않고 웃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