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수니 May 15. 2024

37살 엄마 키우는 7살 아이

나는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너를 낳았을까.


오늘 아침부터도 넌 어른스러웠어.


신랑이 출근한다며 우리 둘에게 모닝뽀뽀를 해주고 더 자라며 이불을 덮어주는 소리에 너는 잠이 깼나봐. 넌 나이에 맞지 않게 엄마 한  안 부르고 일어나 혼자 거실로 나갔지.

거실에 나간  조용히 식빵 한 조각을 꺼냈어. 그리고는 너의 키로는 닿지 않는 곳에 꽂혀있는 스프레드 나이프를 꺼내기 위해 싱크대 밑 1단짜리 보조 계단 위에 올라 힘겹게 손을 뻗으며 스프레드를 꺼냈을 거야. 신랑이 출근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넌 이미 소파에 앉아 네가 제일 좋아하는 티비 프로를 틀곤 식빵에 누텔라를 발라 먹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네었어.


"아구.. 우리 엄마 일어났어?" 하고 말이야.


이건 보통 엄마가 자식에게 하는 말 아닌가? 배가 고프면 자는 엄마를 깨워 밥 달라고 할 법도 한데 혼자 의젓하게 식빵에 잼을 발라 먹으며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너.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딸을 두었을까. 싶었지.


난 어쩐 일인지 그런 너에게 거꾸로 내가 더 어리광을 부리며 너의 옆자리에 앉아 얼굴을 부비고 꼭 안아주었어. 그러니 넌 내가 마치 귀엽다는 표정으로 "엄마도 같이 퍼피구조대 볼 거야? 그러면 너무 좋겠다." 하며 뽀뽀로 화답했지.


사실 너랑 티비 보며 뒹굴거리고 싶었지만 오늘 봄소풍을 가는  빵쪼가리 하나로 때우게 할 순 없어 간단하게 계란국을 끓이고 밥을 말아 주었어. 이미 단 것을 먹는  내켜하지 않았어. 하지만 봄소풍을 씩씩하게 다녀오려면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고 하니 더는 군말 없이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지. 투정을 부릴 만도 한데 말이야.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한 두통과 함께 속이 메슥거리는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았어. 아직 공황이 낫지 않았는데 내 임의대로 약을 끊어 그랬겠지. 그래서 오늘따라 더  신경 쓰이지 않게 스스로 척척하는 네가 너무 고마웠어.


사실 등원준비도 버거워서 보내지 말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봄소풍에 들떠 있는  실망시킬 수 없어서 등원시켰어. 하지만 결국 네가 하원하기 15분 전 속에 든 모든 것을 다 게워내고 터질듯한 두통에 타이레놀 2알도 먹었어. 그리곤 약효가 발효될 틈도 없이 가볍게 입을 헹구어내고 수분보충을 하기 위해 포카리를 마시며 너를 마중 나갔지.


평소에 포카리스웨트를 좋아하는 너는 내 손에 들린 포카리를 보곤 눈을 반짝거리며 먹고 싶어 했어. 그래서 엄마가 토하고 먹는 거라 같이 입 대고 먹긴 네가 좀 찝찝할 거 같아서 음료수 사줄까? 하고 물으니  "엄마 또 토했어? 괜찮아?" 하며 뭐 먹을까? 보단  건강을 걱정하더라고. 이런 7살이 어디 있냐고 진짜. 학교도 안 들어간 꼬꼬마가.


그렇게 하원 후 네가 거실에서 공부하는 동안 아직 남아있는 두통끼에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데 갑자기 네가 빼꼼하고 안방을 들여다보았어.


"에구구.. 잠깐만!"


그러더니 부산스럽게 안방을 나가 부엌에서 한참을  뽀시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뭘하는지 싱크대 문도 여는 소리가 들리고 보조계단에 올라가 컵을 꺼내는 소리도 들렸지. 그래서 네가 배고파서 또 무언갈 먹나?하면서 일어나서 뭐라도 해줘야 하나 하는 순간 네가 들어왔어. 한 손에 보리차를 들고 들어오더라고. 엄마 토했으니까 보리차 마시라고.


문득 그때가 생각나더라. 네가 몇 달 전 아주 심하게 독감에 걸렸던 때. 밤새 41도를 왔다 갔다 하는 고열로 밤잠을 설치다 애 잡을 것 같아 아침 일찍 어린이병원에 입원시킬 생각으로 짐 싸던 그날. 아침이 되자 너의 열이 말끔하게 내렸어. 그 힘든 시간을 잘 견디고 이겨낸 네가 너무 기특하고 감사해서 이겨내 줘서 고맙다고 껴안으니 네가 말했지.


"엄마아빠가 이겨준 건데요? 엄마아빠가 계속 열 떨어지게 물 발라주고 보리차 줬잖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기특하면서도 엄마아빠는 더 안 아프게 한 거고, 바이러스랑 싸워서 이겨낸 건 바로 너라고 했더니. 우리 모두가 같이 힘을 합쳐 이겨낸 거라고 네가 나를 꼭 안아주었지.


너도 그때가 생각났던 걸까?


늘 부모로서 하나를 베풀면 넌 우리에게 열 배로 베불어. 우리는 하나를 해줬는데 넌 늘 우리에게 진심으로 다 해줘.


내가 너를 키워야 하는데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 네가 나를 키우고 나에게 많은 배움을 가르쳐 준다는 생각이.


진짜로 나는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너를 낳았을까.



이전 01화 [에필로그] 이번 생은 너와 함께 하려고 왔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