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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수니 Jul 29. 2024

엄마, 괜찮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아이의 작은 실수로 집안이 발칵 뒤집히다.


얼마 전, 늘 평온하기 그지없던 우리 집에 비상이 걸렸다. 아이는 평소 나의 모습을 보고 그저 따라한 것뿐이었지만 대가는 가혹했다.


사람 많은 곳, 시끄러운 곳에 방문할 때마다 소음으로 인한 공황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난 습관처럼 형광연두색의 작은 귀마개를 끼곤 한다.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엄마처럼 귀마개를 끼고 싶다 했지만 작은 아이의 귓구멍에는 잘 들어가지 않아 안된다고 한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아이는 호기심에 클레이 놀이를 하다가 자신의 양쪽 귀에 클레이를 집어 놓고 말았다. 말하기 무서웠을까? 아이는 우리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자기 전 늘 아이의 귀를 파주곤 했던 루틴 덕에 아이의 양쪽 귀를 꽉 틀어막은 하얀 클레이를 보고 우리는 기함을 했다.


"이게 뭘까? 뭘 넣은 거야?"


아이가 놀라지 않게 침착하게 물었지만 아이는 마치 사자후를 내뱉는 맹수를 본 듯이 두 동공이 확장되며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만 있었다.


"응? 엄마아빠가 알아야 해. 말랑말랑해서 집게로도 안 집히는데 이거 설마 클레이야?"


그러자 아이는 목젖을 달랑거리며 겁에 질린 채 악을 쓰고 울어버렸다. 확신이 섰다. 이건 클레이가 확실하고 아이가 오후 4시경 혼자 클레이놀이를 했는데 그때 넣어놓고 무서워 말도 못 하다가 까먹은 거구나. 하고.

우리 부부는 귓속의 클레이를 빼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막 씹다만 풍선껌처럼 쭈욱 늘어나지만 곧 부서져버리는 클레이에 얼어버렸다. 굳으면 고막에 들러붙어 귀가 다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겁에 질린 아이를 달래 안아 응급실로 향했다.


하지만 응급실에 이비인후과 관련 이물질을 뺄 수 있는 장비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 우리와 똑같이 집게로 귀를 파기 시작했고 결과는 같았다. 그리고 여기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날이 밝으면  지역 이비인후과를 가라며 치료를 끝냈다. 좌절스러웠고 걱정이 불안을 태풍처럼 몰아왔다. 별일 아니면 별일 아닌 일인데 걱정이 불러온 불안은 심하게 요동치고 울면서 잠이 든 아이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밤을 꼴딱 새우고야 말았다.


날이 밝는대로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가장 크고 유명한 이비인후과를 갔지만 대기 2시간을 기다린 끝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석션으로 모든 클레이를 빨아내는 동안 아이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난생처음 고통에 울부짖으며 악을 쓰고 울었다. 아이는 중간중간 "잠깐만요.", "마음의 준비 좀 하고요.", "하지 마세요.", "아파요. 그만해요!!" 하며 악을 악을 썼다. 아이의 귀 내부의 살이 같이 뜯겨 피가 흥건히 나오고 있었지만 더 굳으면 크게 다칠 수 있어 몸을 부르르 떨며 우는 아이의 온몸을 잡은 채 치료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10분여 넘게 병원이 떠나가라 우는 치료가 끝나고 아이와 의사 선생님은 녹초가 되었다. 무사히 모든 클레이를 다 제거 후 아이는 우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꺼이꺼이 그간의 서러움을 토해내고 있었고 우리 부부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안 말리고 아이의 몸을 꾸욱 잡고 있던 우리에게도 잔뜩 토라진 아이를 토닥이고 달래며 이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


이 날 아이는 잠자리에 들면서도,


"제가 그만하라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선생님이 안 들으면 엄마가 말렸어야죠. 엄마는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잖아요!"


하며 또다시 서러움을 토로했지만 널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 외엔 아이를 나무라진 않았다. 이 사건으로 아이는 누구보다 큰 교훈을 얻었을 것이고 이미 많은 것을 깨달은 아이에게 왜 그랬냐며 야단치면 나중에 또 다른 사고를 쳤을 때 무서워서 말 못 할까 봐 우리 부부는 그날 나무람 대신 침묵을 택했다. 아이에게 한 말이라곤.. 몰라서 실수한 걸로 혼내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 말들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이번엔 내가 물을 엎지르는 작은 사고를 쳤다. 어이가 없어서 "꺄아아아아"하고 소리만 지르며 멍하니 서있고 남편은 '어이구'하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와중에 아이가 말없이 휴지를 가져오며 말했다.


"엄마, 괜찮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나도 실수하잖아. 같이 치워줄게. 실수 안 하는 사람은 없어. 그치? 그러니까 너무 놀라지 말고 같이 치우자. 혼내는 거 아니야.. 알았지?"


아이가 얼마 전 나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모습을 보여 우리 부부는 말없이 웃음만 짓고 있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더니 이 작은 아이는 정말 우리가 하는 고. 대.로. 따라 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말없이 고개를 숙여 웃는 나를 아이는 놀라고 운 것으로 생각했던 걸까? 아이는 연신 괜찮다는 말과 함께 갑자기 양 팔로 내 목을 꼬옥 끌어안으며 고 자그마한 손으로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내가 요즘 요 녀석 때문에 울고 웃고 기막힌 맛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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