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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수니 Aug 06. 2024

엄마가 아프면 제 마음에 비가 내려요.

하는 거 없이 나른한 오후 3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잠이 스르륵 들 참이었다. 거실에서는 아이가 여름방학을 맞아 태블릿을 보며 간간히 웃는 소리가 들려오고 '딱 한 시간만 잘까?'싶을 찰나 호흡이 딱딱 끊기며 숨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안다. 이렇게 공황이 시작된다는 것을. 최대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길 반복하는 찰나, 스멀스멀 팔이 저리기 시작하면서 사후강직된 병아리 마냥 손끝이 마비되듯 굳으며 흡사 닭발의 모양이 되었다. 심호흡을 가다듬어도 한번 시작된 증상은 멈출 길 없이 그다음, 또 그다음의 절차를 꼬박 밟아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거실에서 아이가 달려와 내 팔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엄마, 아파요? 제가 주물러 드릴게요."


아이는 조그마한 손으로 열심히 굳은 내 손과 팔을 주물렀다. 어릴 때 엄마아빠에게 칭찬받기 위해 안마를 할 때 손가락이 아팠던 기억이 나 아이에게 고맙다고. 하지만 손 아프니까 그만하고 가서 쉬라고 한 뒤 그대로 침대에 누워 다시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깊게 들이마시고. 깊게 들이 내쉬고. 아이는 그렇게 거실로 나가는 듯하더니 정수기에서 물 한 컵을 뜬 뒤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엄마, 물 한 잔 드세요. 예전에 친구가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 할 때 선생님이 물 주니까 물 먹고 괜찮아졌어요."


고마움, 미안함, 기특함 여러 감정이 겹치며 아이가 주는 컵을 받아 들어마시자 아이는 자연스럽게 빈 물 컵을 받으며 말한다.


"엄마, 이제 다시 누워서 쉬세요. 쉬다가 잠이 오면 자요."


라며 내 핸드폰으로 유튜브에 들어가 음성검색을 통해 자장가를 찾아 10시간짜리 자장가를 틀어 내 옆에 두었다. 조용한 자장가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질 거라면서. 어린 나이에 아픈 엄마를 간병하는 방법을 아는 아이가 짠했다. 그래서 되도록 아이 앞에서는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데, 요새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다 보니 공황은 소리소문 없이 늘 내 옆에 상주해 있었다. 아이는 나에게 물 한 잔을 주고 난 뒤, 거실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책상에 앉아 노르슴한 불빛의 스탠드를 켜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미술놀이 하나? 싶어 계속 길게 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아이가 무언가 쓱쓱 싸이펜으로 그리는 소리가 들리고 야무지게 사인펜 뚜껑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사브작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내 팔을 들어 무언가를 내 팔에 묶어주었다. 뭔가 싶어 눈을 뜨니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엄마, 이건 사랑의 팔찌인데 이 하트가 엄마에게 힘을 줄 거예요."


예쁜 녀석. 가끔 어린이집 전화상담을 하면 담임선생님이 했던 말들이 불쑥 떠올랐다.


"어머님, 아이가 세심하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소통하는 방법이 너무 예뻐요. 하루는 제가 테이프 커터기를 준비 못해서 아이에게 테이프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잘라 준 적이 있는데.. 아이가 테이프를 쓰면서 "선생님, 제가 테이프 너무 많이 써서 손이 너무 아프죠? 죄송해요. 힘들게 해서."라고 말하더라고요. 어쩜 그렇게 말을 예쁘게 하는지."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쁘게 봐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잘하는 거죠. 어머님."


아이에게 딱히 예쁜 말을 골라하는 것도 아니고, 불쑥불쑥 내 감정에 휘둘러 오은영 박사님이 보면 기겁할 행동을 할 때도 있는데, 아이는 그런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팔찌를 채워주며 배시시 웃는 아이의 얼굴을 당겨 볼에 쪽- 소리 나게 뽀뽀를 했다.


"엄마, 이제 진짜 쉬어요. 잘 자요."


하며 아이는 자신의 이불을 나에게 덮어주며 거실로 나갔다. 따뜻한 마음의 효과일까. 거칠고 힘들었던 호흡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직 손을 닭발모양을 유지한 채 뻣뻣하게 굳어 있었지만, 안다. 이것도 20분 남짓이면 풀릴 거라는 것을.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자 아이가 틀어놓은 자장가의 편안한 선율에 몸을 맡긴 채 평화로운 기분마저 들었다. 아이는 거실에서 무얼 하는지 부산한 움직임의 소리가 들렸고, 그 좋아하는 태블릿도 마다하고 뭐 하나 싶어 상체를 일으켜 아이가 있는 거실을 내다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아이는 오전에 내가 지나가는 말로 "빨래도 개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할 게 태산이네."라던 말이 떠올랐던 걸까? 혼자 건조기에서 빨래를 왕창 꺼내 소파 위에 부어놓고 빨래를 개고 있었다. 저 조그마한 머릿속에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저렇게 철이 들어버렸을까. 내 탓은 아닐까. 기특한 마음에 앞서 마음이 아려왔다.



"아가, 힘들어. 그만해. 엄마가 한숨 자고 갤 거야."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하니 아이는 수건을 개다 말고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엄마. 제가 할 수 있어요. 엄마 자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볼게요."


나의 아픔이 아이를 부쩍 커버리게 만들어 버린 걸까. 내가 마음이 건강한 엄마였으면 천진난만한 아이였을까. 죄책감이 들었다. 아이가 조금만 천천히 컸으면 하는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거늘. 우리 아이는 7살에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픈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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