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걸 그랬어요.
예전에.. 1년 전쯤이었던가? 딸아이가 엄마의 할머니는 어땠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 작품 중 '안녕하지 못해 죄송합니다'의 2화 '착한아이 컴플렉스'를 읽으면 알 수 있다시피 난 할머니에 대한 어두운 유년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공연히 안 해도 될 만한 이야기들을 하며 아이에게 사실대로 얘기했다. 아들을 원했지만 딸이 나와 할머니가 병원 바닥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며. 그래서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며.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인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의 간식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프렌치토스트를 굽고 있을 때였나? 굽기 위해 계란물을 묻힐 때였나? 아이가 혼자 방에서 미술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나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엄마! 엄마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걸 그랬어요."
요리를 하다가 아이의 뜬끔없는 말에 요리를 하던 손을 멈추고 아이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뚜껑도 채 닫지 못하고 나왔는지 뚜껑이 안 닫힌 빨간 사인펜을 들고 말을 이어갔다.
"엄마가 여자라서 할머니한테 미움을 많이 받았다 했잖아요. 그러니까 엄마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 뻔했어요. 그럼 엄마는 예쁨을 받았을 테니까요."
아이가 언젠가 내가 실없이 했던 그 말을 맘 속에 담고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급히 손에 들고 있던 조리도구를 내려놓고 거실에서 나를 바라본 채 서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의 앞에 쭈그려 앉아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엄마의 유년시절 좋은 기억만 있길 바랐던 아이의 순수한 맑은 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눈에서 울컥 무언가 솟구쳐 오르려 했다.
"아니야. 그거 알아? 엄마는 여자로 태어나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 왜인 줄 알아"
아이는 내 붉어진 눈을 닦아주며 물었다.
"왜요? 행복한데 왜 울어요?"
나는 서둘러 앞치마에 눈을 비비고 아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엄마가 여자로 태어나서 너를 낳을 수 있었거든. 엄마는 너를 낳기 위해서 태어난 거야. 그래서 엄마는 여자로 태어나서 천만다행이다 싶어."
아이는 나의 대답에 감동을 받았는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자그마한 손과 팔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엄마가 행복하다니까 그럼 나도 행복해졌어요."
며칠이 지난 지금도 아이의 그 말을 떠올리면 울컥거릴 때가 있다.
이 아이는 마치 어린 시절의 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처럼 늘 나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