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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수니 Jul 24. 2024

아줌마,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나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의 방을 아지트처럼 꾸며주겠다는 일념 하에 방구조를 수없이 고민하며 아이의 방 꾸미기에 여념이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요즘.

남편은 회사,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출근하고 나면 나는 아이의 옷장, 피아노, 침대를 번쩍번쩍 옮기고 셀프 도배도 하고, 장난감도 정리하느라 어느새 내 옷은 땀으로 흥건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무기력함으로 늘 처져있고 누워서 천장만 보던  나에게 약간의 소일거리와 쓰임이 있는 것 같아 근 3년 동안 전래 없던 광기의 집착을 보이며 열심히도 꾸미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온통 핑크로 도배되어 있는 아이의 원목 주방놀이 싱크대를 톱질하여 모양을 개조하고 페인트칠을 하며 몸 상하는 줄 모르던 그날. 페인트칠을 마치고 결국 평소에 좋지 않았던 목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몸져누워버렸다. 목이 돌아가지 않았고 목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뒷골이 울리는 두통으로 울면서 타이레놀 몇 알을 털어 넣고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아이가 평소답지 않게 밤늦게까지 놀아달라며 보채댔다. 아이의 재촉에 못 이겨 아이의 침대에 누워 아이를 지켜만 보고 있는데 늘 예쁜 말만 하는 아이가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선을 넘었다. 그만 누워있고 자기랑 레고 놀이를 하자며.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자기가 반갑지 않냐며. 낳았으면 소중하게 대해줘야지 왜 모른척하냐며. 그건 진짜엄마가 아니라며. 진짜엄마는 그럴 수가 없다며. 엄마 하지 말라며.


아이의 요청대로 난 열심히 방을 꾸몄을 뿐이고 그래서 아플 뿐인데 아이의 말이 야속했고 화도 났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 훈육을 해야 하는데 머리 전체를 울리는 두통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며 말했다.


"응. 나 진짜엄마 아니니까 그럼 내 방으로 갈게. 아줌마 갈 테니까 혼자 놀아."


엄마로서의 품위와 이성을 잃은 나의 유치한 말에 아이는 보란 듯이 대답했다.


"네. 아줌마 잘 가세요."라고.


어른으로서 굉장히 부끄러운 대응을 한 나지만 거기에 또 보란 듯이 그렇게 대답하는 아이가 얄미웠다. 나는 안방 침대에 오르기 전 신경질적이게 선풍기를 발가락으로 툭 켜고 이불을 무릎 사이에 잔뜩 구겨 넣고 누웠다. 화가 나니 뒷목이 더 뻐근해지는 기분이 들어 뒷목을 주무르며 잠을 청하기 위해 두 눈을 감았다.


'아이고... 유치해라. 네가 엄마냐 진짜.'


두 눈을 감으니 나의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나도 기분 나쁜데 그럼 뭐 어쩌라고.'


또 다른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37살의 성숙한 나와 7살 같은 미숙한 내가 안 그래도 정리 안된 마음구석을 어지럽혔다. 그때 자신의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남편이 안방을 들어서며 말했다.


"여보. 여기 있는 이 아이가 아줌마랑 같이 자고 싶대요. 들어와." 하며 아이를 안방 침대로 올려 보냈다.

남편은 나를 꾸짖듯 '으이구. 또 애랑 똑같이 구냐. 내가 딸을 둘을 키우지.' 하는 표정으로 약간의 웃음을 머금고 토라져 누워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쭈뼛대며 내 옆으로 와 누웠다. 아이가 먼저 나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하지만 어린애 같은 나는 아이의 반대 방향으로 또다시 토라져 누웠다. 아주 못난게도.


그러자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 눈치를 보듯 말했다.


"아줌마,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나요?"


별 거 아닌 그 말에 뭔가 속에서 울컥했다. 못난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투정에 똑같이 감정적으로 대하는 미숙한 엄마에게 손을 내미는 어린아이의 진심어린 화해였다. 나는 아픈 목을 부여잡고 다시 아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아줌마,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 말이 잘못 나왔어요. 마음이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아이의 사과를 들으니 내가 진짜 더 못나보였다. 조금만 잘 이야기해도 충분히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아이다. 내가 좋아서 신나게 방을 꾸며줘 놓고 내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어쩌면 보상을 바랐던 건 아닌지. 아직도 내 눈치를 보느라 엄마라고 안 하고 아줌마라고 말하는 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워 품에 꼭 안았다.


"아줌마.. 그런데 저한테도 사과했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도 아팠거든요."


마음이 아렸다. 이렇게 속이 가득 찬 아이에게 몹쓸 말을 한 나라니. 에라. 정신 나간 이 엄마야. 싶었다.


"미안해. 엄마가 어른답지 못하게 말해서. 나쁜 말해서 미안해."


하며 아이의 볼록한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아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그제서야 환히 웃었다.


"아줌마, 이제 제 엄마예요?"


아이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부끄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래, 마."


괜히 부끄러움에 아이에게 시비걸듯 웃으며 얼마 전 똑단발로 자른 아이의 머리를 헝크러뜨린다. 아이는 '인마'라는 단어에 꽂혀 "어? 인마는 나쁜 말인데?"라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어른에게 손가락질하지 않아." 약간은 어른모드로 단호하게 나는 아이의 손가락을 한 손으로 꼭 쥐어잡으며 아이의 손에 가볍게 뽀뽀를 했다. 아이는 멋쩍은 미소를 띠며 애교를 부려댔다.


"엄마가 내 방으로 같이 가서 콩쥐팥쥐를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좋은 꿈을 꿀 것 같아요."


아이의 방을 꾸며주면서 제 방에 책을 가득 넣을 때는 책은 필요 없다고 책장은 안 넣었으면 좋겠다던 아이는 어디 갔는지 밤마다 동화책을 읽어 달라고 성화였다. 바람직한 아이의 변화에 뿌듯해 나는 아이의 자그마한 손을 꼭 잡고 같이 방으로 건너가자며 아이의 손을 잡아당기니 배시시 웃으며 좋아하는 딸.


늘 아이와 똑같은 눈높이로 같이 진심을 다해 싸우다가도 또 5분만 지나면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되는 우리를 보며 남편을 늘 혀끝을 찬다. 쟤는 제 엄마가 그렇게 놀려 먹어도 제 엄마가 "미안해. 이리 와~" 한마디 하면 여태 아이를 달래주던 자기를 등지고 제 엄마한테 쪼르르 가버리고 제 엄마밖에 모른다고. 우리 둘을 마치 '환장의 짝꿍'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럼 어떡해. 싸워도 얘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데?





아이가 주말부터 수족구 + 응급상황이 있어서 연재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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