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참 짜증 날 정도로, 식상하고도 식상한 말이다.
“운동하세요”
“운동해 운동, 그게 제일이야. 나 진짜 운동하고 삶이 달라졌다니까 “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명확한 정답이 맞다.
굳이 의사의 처방까지 가지 않더라도, 평생 세상을 살며 “밥 먹어라”, “살 빼라”,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이 “운동해라”가 아닐까. 앞집 순이, 뒷집 철수, 하다못해 멍뭉이까지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을 그 말.
누군가의 오지랖 가득한 조언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운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끝난 후 그 개운함과 뿌듯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이 낳은 무기력에 잡아 먹혀버린 뇌는 세상의 작디작고 크디큰 모든 자극을 피해 제발 누워서 잠이나 자라 명한다. 멍하게 앉아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도파민 중독에나 빠지라 유혹한다.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신체를 움직일 수 있는 어떠한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곧 무기력이며,
배고프면 밥이 먹고 싶고
졸리면 잠을 자고 싶은 것처럼
깊은 우울은 오로지 죽음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인데, 곧 죽어도 아쉬운 게 없을 사람이 뭔 놈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굳이] 걷고 뛰며 운동하고 싶을까?
“의지력이 약해서 그래”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런 시답잖은 개소리들은 우울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머리통을 대놓고 바닥에 처박는 위험 천만한 말이라는 것을.
평생 철천지 원수지간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추천할 만한 언사이긴 하다.
정말 마음의 병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을 돕고 싶다면, 섣부른 조언이나 오지랖을 떨기보다 차라리 가만히 들어주고 꼬옥 한번 안아주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그렇게 남을 돌아보며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이가 주변에 단 한 명이라도 존재했다면 애초에 그런 깊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것은 온전한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우선 그 무기력의 늪에서 한 발짝이라도 발을 뻗어 빠져나와야만 한다.
동기 부여라든가 큰 계기 같은 마중물이 있어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작은 에너지라도 채워야만 그 만병통치약이라는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연료 없이 자동차가 굴러갈 수 없는 것처럼.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가장 쉽고도 간단한 방법은 정신의학과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배즙을 내어 먹거나 꿀에 재운 생강차를 마시는 것보다 즉각적인 치료방법은 서둘러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처방약을 지어먹으며 심할 경우 수액을 맞는 것처럼.
요즘은 비교적 흔해지고 쉬워졌다지만, 거기까지 갈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병원의 처방약이 아니더라도 흔히 살 수 있는 각종 영양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나 역시도 고함량의 영양제를 챙겨 먹고 나서는 컨디션이 한결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체의 에너지가 조금이나마 생기니 부정적인 생각도 훨씬 덜했다. 육체와 정신은 순환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동이 중요하다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테니까. 거기에 쓰는 돈을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절대적 휴식과 그로 인해 온전히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채워진 연료조차 없는 상태에서 억지로 노동을 감행한다면 그 어떤 천하무적 슈퍼맨도 버텨낼 수 없다.
물론 그러한 시간을 내기 힘든 현실적 상황으로 인해 우울증이 생겨난 거겠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해야 한다. 각종 중증의 병에 걸리면 전문의나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중증의 우울증 또한 도움이 필요한 상황임을 자각해야만 한다. 혼자 감당할 수 있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온전히 자신을 돌아보며 갑자기 유독 심하게 찾아드는 부정적인 생각의 시작점이나 원인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찾아보는 것이 좋다. 여자들의 경우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그날 전 [생리 전 증후군]의 영향도 분명 있을 수 있다. 나는 오히려 출산 전에는 없었던 생리통이나 생리 전 증후군이 출산 후 심해진 경우인데, 불쑥 부정적 생각들이 잦아지면 날짜를 헤아려 깨닫곤 한다. 원인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아주 컸다.
그로 인해 스스로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어플도 잘 나와있어 주기가 되면 “오늘은 불안, 우울, 초조의 마음이 생길수 있어요. 안정을 취하세요“라며 친절하게 안내까지 해준다.
그렇게 약이나 영양제, 휴식으로 약간의 에너지가 채워졌다면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며,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깨닫고 실행하는 시간. 삶에 대한 동기부여와 계기를 만드는 것.
나에게 있어 첫 번째는 아이였다. 아니 그 아이를 키워내기 위한 내 몸이었다. 아이의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재활치료실을 다니다 보면 (중증 발달장애는 사실, 나을 수 있는 치료의 영역은 아니다. 반복된 훈련으로 자발적으로 서기 위한 실오라기 같은 희망과 작은 도움만을 줄 뿐), 아이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대기실에서 한 자리에 40분씩은 앉아 기다려야 한다.
오랜 무기력으로 인해 틈만 나면 누워있거나 움직임 없는 하루를 보내다 보니, 허리에 힘이 없던 나는 그조차 너무 힘이 들기 시작했다. 감각이 예민해 먹을 것을 가리던 아이는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한 후 가리는 것 없이 뭐든 싹싹 잘 먹었고 그에 맞춰 또래에 비해서도 눈에 띄게 쑥쑥 자라났다.
남자아이는 타고난 근력이나 뼈대가 확실히 여자아이와는 다른 듯 이제 초등 2학년이 된 아이의 팔뚝은 나와 거의 비슷해졌다.
'이래선 안 되겠다. 아이를 번쩍 안거나 함께 뛰놀 수는 없더라도, 하다못해 치료실에 앉아 있을 수 있는 힘이라도 길러야지... 당장 내일 죽더라도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은 다 하고 가야지.'라는 생각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두 번째는 여행이었다.
지독한 집순이면서도 여행은 좋아하는 나는 삶의 힘겨움과 고통을 홀로 여행에서 털어내곤 했었다.
아이의 돌발 행동이라든가,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마음의 도피처로 여행카페를 들락거리며 설렘을 담았고, 회원들의 여행기를 보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서는 그렇게 충전된 에너지로 또다시 현실을 살아냈다.
이사와 코로나라는 큰 이벤트와 더불어 6-7년간 떠나지 못하다가 여행의 자유가 다시 풀린 작년, 중순 무렵 정말 오랜만에 혼자 여행을 다녀와서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본격적인 여행은커녕 비행기를 타고 숙소를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져 녹초가 되었다.
좋아하는 여행을 위해서라도, 운동의 필요성은 나에게 절실함으로 다가왔다.
세 번째는 지난 화 [풍무동 미용실]에서 말했던, 스타일과 외모의 변화였다.
우연히 나와 잘 맞는 미용실을 찾게 되면서, 그 헤어 스타일과 어울리는 옷과 신발을 사게 됐고, 조금씩 외모의 자신감을 찾으면서 무언가 하고 싶은 의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예쁜 몸까지 갖게 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이왕 살기로 마음먹은 거, 하루를 살더라도 비실거리고 병약하게 살다 가는 것보다는 건강하고 예쁘게 나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꼭 미용실이 아니더라도, 돈은 좀 들더라도, 자본주의의 물질들을 적극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경험상 명품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공허할 때 사고 싶다는 생각이 미치게 들다가도, 막상 손에 넣으면 그뿐. 허무함이 밀려왔다.
차라리 다이슨 에어랩! 하하. 광고도 아니고 뭐 갑자기 뜬금없냐 싶겠지만, 부스스한 머리를 차분하게 진정시켜 주며 곰손인 나의 소질과는 무관하게 빠른 속도로 웨이브를 만들어 내는 다이슨은 정말 신세계였다.
여행지에 갈 때도 그 무거운걸 굳이 챙겨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엥? 굳이?’라은 마음이 들었었지만 그 세계를 영접한 후 이유를 뼈저리게 알 것 같았다.
미용실과 더불어 외모의 꾸밈에 큰 한몫 톡톡히 하는, 없어서는 안 될 신문물을 별다른 개연성이 없을지라도 마구 추천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스마트워치다.
운동을 위해 스마트워치를 구입했다기보다, 스마트워치를 구입한 김에 운동을 하게 됐다는 게 나에겐 맞는 말이다.
어느 날 스마트워치가 문득 궁금하진 나는 꾸준히 사용할지 어떨지 알 수 없었기에 비싼 애플이나 갤럭시가 아닌 인터넷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워치를 하나 구입했다.
전화받기나 문자전송등은 불가능했고 온전히 시계 보기와 걷기라든가, 심박수, 운동에 대한 기록만을 할 수 있었기에,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어떤 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찍히는 기록과 그래프들이 재미있어, 루틴을 만들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동기부여는 되어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계기들로 시작하게 된 운동은 넘쳐흐르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곧 긍정적이고 희망찬 생각들로 채워 주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때그때 상황이나 해이해짐 등으로 이런 각오와 다짐들이 또다시 느슨해질 때도 물론 있지만, 거기에 대한 지나친 강박은 갖지 않으려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세 번! 꼭! 이런 높은 목표 설정은 또다시 자신에 대한 좌절과 절망감을 불러오기 쉬우므로 한 달에 다섯 번 정도 운동을 했다면 스스로를 칭찬해 준다.
‘그래, 몇 년 동안 꼼짝 안 했는데 다섯 번이 어디야?! 그래도 그전보다 훨씬 나아졌어. 다음 달은 좀 더 해보자!‘
소소한 목표 설정과 실행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끌어올리는데 역시 도움을 주었다. 평소 지나친 비난만을 듣고 자란 사람들에겐 나 자신을 토닥이고 위로하며 칭찬하는 일이 더욱 힘들 수 있지만 그렇기에 그런 시간들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
꼭 나와 같은 계기가 아니더라도, 현재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과 좋아하며 사랑하는 어떤 것들을 떠올리며 삶의 이유를, 움직임의 동기를 하나씩 찾아보길 희망한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MOVE를 LOVE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