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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Jun 30. 2019

Oh, my lovely zombie!

돌이켜보면 나의 이십 대는 자학의 연속이었다. 내 안의 부글거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온갖 기행을 저지르곤했다.  한여름 땡볕 아래 자전거를 끌고 1시간 반 거리를 출퇴근한다던지, 비가 와 그마저 불가능하면 3시간을 걸어서 퇴근한다던지. 그 와중에 다이어트를 한다며 밥을 거르고, 상사와 어울려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뒤늦은 사춘기였는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나를 스스로도 포기하고 싶었는지. 내 몸 상태따위 안중에도 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데 열중했다. 그중 절정은 성남에서의 자취 생활과 고어물(피가 낭자한 영화나 사진 등의 창작물. 실제 시체 사진도 포함)탐닉이었다. 


양재로 출퇴근하던 시절이었다. 일산을 떠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몇 안되는 짐을 꾸려 성남의 원룸촌으로 향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이웃사촌이었던 전 남친이 존재하는 동네를 벗어나고 싶어서였는지,  슬슬 불편해지는 부모님의 눈초리를 벗어나고 싶어서였는지. 아님 둘 다였을지도.  


통장을 박박 긁어도 쥐꼬리만한 월급에 나오는 돈은 빤했다. 서울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성남 구석의 원룸촌, 그중에서도 제일 열악한 반지하방을 월세 20에 들어갔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언덕을 오르던 버스가 뒤로 밀리던 동네, 그 언덕에 숲처럼 빽빽이 허름한 주택과 빌라가 들어 차 있던 곳. 나도 그 생소한 생태계의  일원이 되어, 편의점이며 골목을 부지런히 오갔다. 


내 방에는 볕이 들지 않았다. 다닥다닥 붙은 옆 건물 사이에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든 벽이 15센티도 안되는 거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하늘을 볼 방법은 요원했지만 방안이 지나가는 행인에게 노출될 일은 없었기에 오히려 만족했다. 대신 회사에서 하늘 사진을 잔뜩 프린트해 한쪽 벽에 붙여놓곤 나름 괜찮은 인테리어라며 자조했다.     


밥통도, 전자레인지도 없었다. 하루에 한 번만 밥을 먹었으나 이상하게 몸은 불어만 갔다. 아마 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혼술의 경지에 이르자 내가 술에게 먹히고 있었다. 그 지하방에서 술에게 영혼을 잡아먹힌 나는 밤새 끔찍한 것들을 찾아보다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그러곤 좀비처럼 양재로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당시 유명한 좀비 영화 몇 편이 연달아 흥행했다. 그것을 다 섭렵하자 머리가 터지고 내장이 흘러나오는 정도의, 분장으로 만든 영화에 만족할 수 없었다. 우연인 듯, 의도인 듯 고어사진을 접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사진들. 누가 누굴 죽이는 게 너무 흔한 괴담들. 혼자 지하방에 남겨진 나는 영혼의 자학을 매일 밤 반복했다. 

여름이 되자 화장실 하수구에서 냄새가 올라왔다. 화장실 문을 닫아도 냄새가 가려지지 않았다. 좀비가 실제로 있다면 이런 냄새였을까. 술에 취한 건지, 냄새에 취한 건지 분간도 못하고 잠드는 나날을 되풀이했다. 


그날도 환한 형광등 아래에 취한 상태로 쓰러져 잠든 날이었다. 꿈속에 좀비가 나타나 쫓아왔다. 

“그르르르…”

창턱 위로 도망친 내게 좀비가 손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더듬거리며 뻗는 손에 발목이 잡힐 듯했다. 역한 냄새와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어딘가 익숙했다. 

“덜컥! 쾅!!”  

이상한 소리에 비틀거리며 잠에서 깼다. 세상이 빙빙 돌았다. 익숙한 냄새 가운데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바로 담배 냄새였다. 


나는 담배를 피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팽개친 가방에 동그란 구멍을 내며 덜 꺼진 담배가 떨어져 있었다.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감히 창문을 올려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사람이었다. 

‘그르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그가 방범창 너머에 서 있었다.  


정신없이 스위치 내려 불을 끄곤 창문 쪽에서 볼 수 없는 구석에 숨어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온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자박자박 소리, 그리고 자물쇠를 잠그지 않고 안전고리만 걸린 문을 열었다 닫는 소리.

 “덜컥! 쾅!!”  

또다시 자박자박 소리. 한참 후 발소리가 멀어지자 112에 신고할 수 있었다. 경찰은 피해 상황을 묻곤 아무것도 없자 인근 순찰을 강화하겠다는 말만 하고 끊었다. 그에게 이런 신고는 일상인듯 노곤한 말투였다. 


그 후로 고어물을 끊었다. 내 것이 아닌 줄 알았던 죽음이 턱 끝까지 와 있다는 걸 깨닫자 재미로 그것을 구경하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집에 똑바로 걸어 들어갔다. 걸쇠, 자물쇠까지 꼭 잠그고, 잘 때는 더워도 절대 창을 열지 않았다.-결국 냄새를 견디다 못해 계약만료 전에 다른 집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 좀비남은 지하방에서 좀비로 죽어가던 나를 살렸다. 아마 그 사건이 없었다면 나는 정말 그 어두컴컴한 방에서 썩어 가고 있었을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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