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가 달아오르자 가수가 무대에서 스탠딩석으로 뛰어내렸다. 마침 앞에 서있는 -군인으로 보이는-청년 팬에게 물었다.
"새해 소원이 뭐예요?"
“형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제 소원은 그것밖에 없어요.”
이 한마디가 올림픽 체조 경기장을 조용히 울렸다. 당시 그 가수가 전 소속사와 거액의 소송에 휘말린 때였다. 인터넷 뉴스에 나오는 그의 표정이 위태로워 보여 가슴 졸였던 건 나만이 아니었다. 대답한 청년 팬도, 가수도, 출산을 한 달 남기고 그곳에 달려간 나도, 모두가 먹먹함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팬이란 그런 것이다. 먼발치에서 그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중히 품고 그의 앞날이 잘 풀리길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
글쓰기 분야 또한 나는 팬이라 자부할 수 있는 몇몇 작가가 있다. 그들은 은유 작가님과 김영민 교수님, 악아 작가님이다. 오늘은 이 글에서 슬쩍 팬심을 풀어볼까 한다.
우선 은유 작가님. 섬세하고 따듯한 시선의 글을 처음 읽는 순간, 사랑에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토록 섬세한 글은 깊은 관찰과 사유의 결과물이란 걸 내 글을 써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럴수록 더욱 그녀의 책을 파고들었다.-은유 작가님이 쓴 대부분의 책을 읽었고, 어떤 책은 재독 중이다-덕질을 겸한 독서를 통해 사회 약자 문제와 현대시 감상 등 혼자서는 알지 못했을 세계를 접했다.
두 번째는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김영민 교수님. 읽을때마다 방대한 배경 지식에 한번 놀라고, 그걸 쉽고 재밌게 푸는 기술에 또 한 번 놀란다. 그의 칼럼이 새로 나올 때면 TTS(Text To Speech ; 텍스트 음성 변환 어플)로 기본 세 번은 듣는다.-TTS 어플을 이용하면 이동, 요리, 목욕 등 일과 중에도 짬짬이 글을 읽을 수 있다-반복해서 듣다 보면 칼럼의 구조가 보이고, 유머를 어떤 식으로 쓰는지, 인용을 어느 부분에 쓰는지, 조금씩 눈이 트인다.
세 번째는 브런치 개미지옥에 처음 발 들이게 한, 악아 작가님. 그녀의 글은 쉽게 읽히지만 쉽지 않다. 마냥 웃으며 읽다가도 뒷맛이 쓰다. 반복해서 읽다 보니 그녀가 웃음으로 포장한 ‘기혼여성의 삶’이라는 씁쓸한 알맹이가 보인다. 언중유골이랄까, 이런풍자는 지목받는 당사자도 쉽게 화를 내지 못한다.-'시어머니 자리가 세네.', '그렇죠?',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본인이 더 세니까.', 범띠 며느리의 탄생 中- 나도 그렇게 고급진 풍자를 구사하고자 노력 중이지만 쉽지는 않다.
이 외에도 브런치나 글쓰기 모임 등을 통해 만난 재야고수의 글을 남몰래 흠모할 때도 있다. '어쩜 이렇게 잘 쓴담! 나는 발톱의 때도 안 되겠는걸?' 비교로 주눅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5초 만에 잊고, 그 작가의 팬이 되어 읽고 또 읽는다. 내 글은 동경하던 작가들이 가르쳐준 결과물이 되어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춘다.
덕질은 작가에게도 이득이지만 팬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작가를 동경하고 그의 작품을 계속 접하다 보면 나의 글도 발전한다. ‘나’에 갇혔던 시야가 넓어지고 본받고픈 동기가 생긴다.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의 적극적인 팬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다음 매거진 글은 '글로 밥 벌어먹는 여자' 작가님의 <엉덩이보다 궁둥이가 무거워야 한다>입니다. 글쓰기에 1% 부족한 디테일을 살려주는 글밥 작가님의 비법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할지 막막하다면 지금《매일 쓰다 보니 작가》글을 추천드립니다. 꾸준하게 글을 쓰며 자신만의 무기를 단단하게 다진 작가의 노하우가 궁금한 분들은 매거진 구독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