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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민 Feb 01. 2022

수심, 5m 안전정지 3분 (6)

#브런치 #소설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 #자격증 #위로 #감동 #여행


은수는 퇴사 후, ‘조금 쉬어야겠다.’ 생각했다. 은수는 탄탄하고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했다. 본인을 힘들게 하던 회사를 벗어난 지금이라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탄탄하고 건강한 몸을 갖게 되면, 탄탄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회사 때문에 사람 때문에 미련한 나 때문에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태우는 일은 없지 않을까. 은수는 건강하고 멋진 몸과 단단하고 건강한 마음이 막연히 희망찬 서른을 위한 필수 절차라고 단정 지었다. 필수 절차를 무시하고, 다른 방향을 찾는다는 것은 그 당시 은수에게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계획대로 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쇼핑몰이 몇 시까지니까 몇 시에 만나서 몇 호선 지하철을 타고, 중간역에서 버스로 환승해서 2시간 쇼핑하고, 커피 마시고 헤어지자.”

“은수야, 왜 그렇게 모든 것을 정해서 말해?”


은수는 익숙한 강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무너져있었다. 아침, 저녁 하루에 두 번씩 매일 운동. 400g의 단백질과 150g의 고구마. 어느새 운동은 은수에게 강박이 되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이브, 담당 트레이너가 조용히 찾아와 말을 꺼냈다. 


“회원님,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그만두게 되었어요”

“제가 그때까지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을까요?”

“회원님 몸이 근육도 없고, 워낙 좋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안 될 가능성이 높아요”


은수는 마치, 버스를 잘 못 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방향이 아닌데, 이렇게 가면 반대로 가는데, 빨리 내려야 하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출 때까지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채 불안하게 울먹거리고 있는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길을 잃었다. 버스는 이상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물어봐도 알 수 없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스물셋, 인도 배낭여행. 굽이굽이 산길을 건너 도착한 작은 마을. 길을 잃어 만난 그곳은 아름다운 호수와 해맑은 아이들로 둘러 쌓인 작은 마을이었다. 은수는 지명조차 몰랐던 그 작은 마을에서 원래의 여행 계획을 전부 포기한 채 오래도록 머물렀다. 은수는 알았다. 아름다운 호수와, 해맑았던 아이들을, 친절했던 이웃들과 행복했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때 은수가 잘못된 버스에 올라탔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길을 잃어버렸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세상은 가끔,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길을 잃어도 괜찮다는 것을. 오히려 생각하지 못한 선물을 받게 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것을. 


스물셋의 은수는 길을 잃어도 행복했지만, 서른이 된 은수는 조금만 길에서 벗어나면 과호흡에 시달렸다. 은수는 매일 길을 잃었고, 매일 불안했고, 매일 울며 길을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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