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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민 Feb 04. 2022

수심, 5m 안전정지 3분 (7)

#브런치 #소설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 #자격증 #위로 #감동 #여행


1년 동안 함께한 담당 트레이너와 계속 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매달릴 수도 애원할 수도 없었다. 내린 결정에 한 마디도 곁들일 수 없는 완벽한 타인. 비즈니스 관계에서 은수는 원하는 것을 마냥 들어달라 울며 떼쓰는 어린아이가 될 수 없었다. 은수는 이미 비즈니스를 아주 잘 알아버린 슬프고 씁쓸한 어른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은수는 애써 웃으며 바보 같은 인사를 건넸다. 담당 트레이너의 앞날을 응원해주며 돌아오는 길에는 담배 한 갑을 샀다. 크리스마스 내내 담배도 눈물도 멈추지 않았다. 하루에 두 번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했다. 매일 야근을 했고, 회사에 스스로를 맞춰보려 노력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은 은수의 생각대로 흘러가는 것이 어느 하나도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은수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잘못된 길로 흘러가고 있었다. 무너지는 마음을 애써 억지로 붙잡고, 올라가고자 했었지만, 상황은 물에 빠진 것처럼 수심 깊은 곳으로 계속해서 은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은수는 원망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열심히 일했고 노오력을 했다. 아등바등 참고 견뎠다. 이것도 힘들면 나중에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냐며 이까짓 껏 전혀 힘들지 않다며 스스로를 되뇌었다. 서른이라면, 어른이라면 덤덤하게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작 은수는 서른을 훌쩍 큰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세상은 서른에게 기대하는 것이 많았다. 은수는 서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자 애썼다. 이해되지 않는 모든 것을 ‘이유가 있겠지.’ 읊조리며 애써 이해되지 않는 모든 이유를 외면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아닌 것도 옳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감싸야할 때가 많았다. 아니라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지만 은수는 서른이었고 어른이었다. 아무리 중심을 잡고 버텨 서 있어보려 한들 서있는 세상 자체가 기울어져 있다면 온몸이 흔들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생활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버티고 참고 노력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아닌 것을 옳다며 애써 외면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내 몸도 마음도 생각하지 않고 외면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처음부터 잘못된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건지, 버스를 반대로 탔던 건지, 번호를 헷갈렸던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찾을 수도 없을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어그러져 있었다. 


‘스스로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런 것도 못 이겨내냐며 감싸주지 못해서 미안해. 잘했다는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아서 미안해. 못났다고 더 열심히 하라고 채찍질만 해서 미안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미안해.’

은수는 매일 자신에게 잘못을 구하며 잠이 들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용서를 구할 사람도 용서를 해줄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은수는 매일 스스로를 질타하고 위로하고, 또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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