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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민 Feb 08. 2022

수심 5m,안전정지 3분 (8)

#브런치 #소설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 #자격증 #위로 #감동 #여행


하루라도 스스로를 귀하게 여겨


은수는 여행을 좋아했다. 여행지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풍경만 바라봐도 좋았다. 여행에서는 그래도 괜찮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여행은 은수를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는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여행은 순간이고 일상은 켜켜이 쌓였다. 오늘을 버텨내느라 함께했던 추억은 한 편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고, 그저 그런 하루를 그럭저럭 보내고 나면 시나브로 시간은 흘렀다. 살아있는 삶을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할 때, 은수는 종종 묻어둔 추억을 찾았다. 여행은, 추억은 당연하다는 듯 두 팔 벌려 반갑게 은수를 안아주었다. 은수는 그렇게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일 년을 버텼지만, 그럼에도 위로가 위로되지 않을 때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휩싸였다.


은수의 모든 것이 멈췄다. 더 이상 은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은수의 소원은 행복해지는 것이었지만,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한 달만 여행을 다녀올까.’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곳으로 데려다준다면 은수는 망설임 없이 23살, 인도로 데려다 달라고 말할 것이다. 바쁘게 살지 않아도, 힘을 빼고 살아도,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불편하고 아파도 한 때임을 배웠다. 여행지에서 만난 둘도 없는 그 인연도 결국 일상으로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것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은수는 인도에서 동양인 나이를 잘 맞추지 못하는 점을 이용해 미성년자라 거짓말하고 무료로 관광지를 들어갔고, 갠지스 강 장작불에 타들어가는 시체를 몇 시간이고 바라보며 시간을 때웠다. 맥그로간지 계곡에서 들어가 누가 오래 버티나 내기를 하기도 했고, 그 덕에 일주일 동안 의식 없이 쓰러져있기도 했다. 암리차르 황금성을 바라보며 말도 통하지 않는 현지인과 손짓 발짓으로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마날리에서는 영화관 스크린만 한 북두칠성과 흩뿌려놓은 별 이불을 덮고 매일 밤 잠이 들며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별을 보며 살자고 다짐했다. 그 후로 제주, 몽골, 스위스로 별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별 보는 운은 인도에 다 놓고 왔는지 그 어느 곳에서도 그만한 별무리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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