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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Hana Jul 21. 2020

이혼 접수

고맙고, 미안하다, 전남편아.

심 OO 님, 이번 주 조정 이혼 사건이 접수되었으며, 사건번호는 서울 가정법원 xxxx x xxxxx입니다. 


2008년 여름에 서울에서 결혼했다. 오픈 릴레이션쉽을 지향하며, 우리의 사랑을 외부적 권위 따위에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따로 결혼식도 안 올리고 그냥 정부에 신고만 하는 간편한 결혼을 했다. 제도에 대한 우리의 반항심이 워낙 컸던 때문인지, 해외에 살면서 철이 안 든 덕분인지, 내가 결혼했다고 하면 많이들 의외라고 반응했다. 헤어지고 이혼을 해야 한다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에 당면하고 나서야, 우리가 정말 결혼한 사이였구나, 파리에 어느 베트남 쌀 국숫집에서 둘이 국수를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20대에 만나서 한 해 한 해 같이 자라온 남자. 기억이란 마음먹기 나름이라, 고마운 일, 미안한 사건을 꼽아도 끝이 없을 것 같고, 마음 거칠게 먹고 서운한 일을 꼽아봐도 끝이 없을 것 같다. 


프랑스에서 처음 만나서, 일본에서 잠깐, 서울에서 몇 년 살다가 같이 프랑스로 돌아갔다. 해외 교환학생 제도가 한국에서 처음 유행하던 시기, 대학 기숙사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만나, 추위와 니코틴에 둘 다 손을 덜덜 떨 때까지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낯선 도시에서 눈이 예쁜 이방인을 만난 그해 가을은 시원하고, 달달했다. 작은 기숙사 방에서 맘껏 사랑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창가에서 따뜻한 코코아를 마셨다. 교환학생에서 돌아와서는 그 애가 한국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둘 다 보고 싶고 그리워 애간장을 태웠다. 간절한 내 마음과는 달리, 정작 서울에 살 때는 참 어려웠다. 나는 대학원을 다니며 여기저기 과외를 하느라 바빴고, 그 애는 종종 밤늦게 까지 홍대 근처에서 놀다가 들어오고는 했는데, 어느 날 학교 가는 버스에서 전날 신랑이 녹음한 메시지를 들었다. 낯선 나라에서 떠돌듯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마음이 많이 아팠고, 많이 미안했다. 


한국에서 사는 게 어려우면, 프랑스에서는 잘 되지 않을까. 파리 사회과학 학교에서 박사과정 장학금을 받는 걸 목표로 하고, 나는 안 되는 불어로 리포트를 쓰고, 신랑은 그걸 말이 되는 불어로 열심히 고쳐 썼다. 그 애가 불어로 문장을 쓰는 것보다, 내가 무슨 말을 쓴 건지 설명하는 데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최종 통보를 받고는 바로 전화를 걸어 같이 울었다. 그렇게 드디어 파리로 상경. 한 주에 두 번씩 집 앞에 시장이 서고, 작은 발코니가 세 개에, 큰 창 밖으로 날마다 석양이 보이는 환한 집을 찾았다. 계약서에 서명할 때, 집주인은 젊은 커플이 여기서 애를 낳지 않을까, 정감 가는 농담을 던졌다. 행복하게 살기에 참 좋은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집이 우리가 같이 시간을 보낸 마지막 집이 되었다. 항상 조금만 더 참으면, 무언가 이 조건만 만족되면 마음을 놓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애가 한국에 오면, 내가 프랑스에 가면, 내가 장학금을 받으면, 그 애가 마음에 맞는 일을 찾으면, 지나고 보면 멍청하기 짝이 없는 행복의 가정문들. 둘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그보다 더 잘할 수는 없을 정도로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생명이 태어나고 죽듯이, 커플로서 우리의 삶은 거기서 끝났다. 


만나서 혼인신고하기 까지 4년 정도 걸렸는데, 별거하고 이혼하는 데에도 4년은 걸렸다. 별거하고 두 번 정도 만났는데, 한 번은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전화할 때마다 뭐 때문인지 화가 나서 미친 듯이 싸울 때였다. 지하철이든 길거리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관되게 싸웠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둘 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더랬다. 별거를 하든, 이혼을 하든 인연의 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씩 메시지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리가 멀리서 겪는 고민의 기복이 비슷할 때가 많아 놀란다. 이 사람에 대해 몸에 익은 감각도 그대로 인지라, 이혼 과정에서 서로가 하는 생각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빤히 보였다. 지난한 이혼 절차가 끝나면, 좋아하던 보쌈이나 실컷 먹자고 약속했는데, 이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성사될지 의문이다. 자주 가던 카페에서 커피라도 한잔 할 수 있길. 서로 이름이 지워진 서류를 받아 들고,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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